조각가 김신일·안규철 개인전
관객이 움직이는 한글 자모 조각…1000명이 함께 필사하는 소설
내면의 움직임과 소통 회복 그려
글자는 미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대상을 흔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수식한다면, 글자와 미술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추상적 개념을 가리키는 기호로서의 글자가 미술의 소재가 된다. 김신일은 ‘글자 조각’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과정을 손에 잡히게 표현하고, 안규철은 ‘글 쓰는 행위’를 통해 단절된 인간관계를 잇고자 한다.
글자 조각가 김신일은 서울 통의동 갤러리시몬에서 개인전 ‘사이, 봄’을 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4’ 후보로 개인전을 연 지 1년 만에 서울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김신일은 글자를 다양한 형태로 조각하고 그 위에 빛이나 영상을 비춰 원래의 단어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표현해왔다. 주로 ‘마음ㆍ믿음ㆍ이념’이라는 단어를 영문과 한글로 조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마음에 모양을 부여해 표현하고 싶어서”다.
이번 전시에는 글자의 자모를 따로 떼어 ‘움직이는 글자 조각’을 만들었다. 또 마음, 믿음, 이념의 자모를 탑처럼 쌓아놓고 관객이 직접 조립하게 한 작품도 있다. 또 다른 ‘마음’은 거울처럼 글자가 뒤집어지기도 하고, 글자의 순서가 바뀌기도 하면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마음의 움직임을, 움직이는 조각 사이의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1월 21일까지. (02)549-3031
조각가 안규철은 ‘생각하는 조각가’로 불린다. 틀에 박힌 기념비형 조각에 반발해 조각의 크기를 줄이고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 그의 드로잉을 보면 작품을 구상하는 그림은 거의 없고 그 작품의 사연을 설명하는 장문의 글로 빼곡하다. 안규철은 “나는 항상 시인을 동경해 왔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과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여는 개인전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에서는 글쓰기가 중요한 요소다. 전시회 주제가 ‘단절’인데, “개인의 내면으로 가장 깊게 들어가는 행위”이자 타인과 소통하는 매개로서의 글쓰기를 체험하게 한다. 고독한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는 ‘1,000명의 책’이라는 퍼포먼스에서는 사전 예약한 1,000여명이 전시장 내 작은 공간에 앉아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나 허먼 멜빌의 ‘선원, 빌리 버드’ 등 소설을 이어가며 필사한다. 다른 작품 ‘기억의 벽’은 관객들이 8,600장의 쪽지 위에‘가장 그리워하는 대상’을 적어서 벽면에 붙여 완성하는데, 쪽지가 붙을수록 전체 그림은 진은영 시인의 시 ‘일곱 개의 단어로 만들어진 사전’이 된다. 글씨를 쓰는 거대한 손이 사라져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묘사한 시다. 안규철은 “글쓰기는 개인적인 행위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접점”이라며 “관객들이 전시를 보고 우리 사회에 질병처럼 번지고 있는 단절을 극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14일까지. (02)3701-95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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