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안전보장법안이 어쩌면 이번 주중 참의원에서 통과될지 모른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약 12만 민중의 데모가 지난 8월 30일 일본국회의사당 주변에서 벌어졌다. 한국 미디어도 주목하는 대학생 단체 ‘실즈(SEALDs)’가 데모의 중심에 서고, ‘안전보장법안을 반대하는 학자의 모임’, 야당 정치인, 연예인 등 많은 유명인들도 참가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인 지식인들의 발언조차도 실즈의 ‘무대’에 올라야 주목을 받는다는 점이다.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지식인의 언어보다, 쉽고 생활 체험에서 우러나온 젊은 실즈의 언어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방증이다. 아무튼 지금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 탓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입장이 달랐던 많은 이들이 ‘전쟁법안’ 반대를 위해 서로 연대하고 있다.
필자 역시 전쟁법안 반대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젊은 실즈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이 데모 현장에서 사용하는 ‘주권자’ ‘국민’ 등의 발언이, 저항 공간을 일본인만의 것으로 연출하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확대해보면 현재도 일본에서는 민족적 마이너리티 지우기,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관한 의식의 결여, 젠더 공간으로서 여성에 대한 차별 등의 여러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진영 내부에서도 공방이 벌어지고 있으며, 실즈가 최근 발표한 ‘70년 선언문’에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관한 언급을 강조한 것은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한 응답이라 여겨진다. 이런 비판과 논쟁이 있는 살아있는 세력들이 좋다. 만약에 10만이 넘는 민중이 통일된 목소리로 외친다면 오히려 더 무섭지 않을까. 필자는 비판이 살아있는 저항 공간에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이들 내부에 전후 일본이 평화국가였다는, 역사 수정주의적 의식이 팽배하다는 점이다. 전쟁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일본의 헌법 9조와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헌법 9조에는 일본이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따라서 전쟁법안이 위헌이라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어쩌면 작금의 아베와 전쟁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아베 이전 일본에 대한 합법적 판단의 근거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메이지가쿠인대학의 정영환 교수는 한 언론 기고에서 “80년대 이전 자민당 정권에 대한 평가가 크게 변한 것이다. 이러한 일부 진보와 리버럴들의 주장에 대해선 보수도 동의를 한다. 그래서 아베 정권과의 대립은 심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진보와 보수가 거의 비슷한 전후사에 대한 역사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존 준커먼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오키나와 우리즌(初夏)의 비(沖?うりずんの雨)’를 보았다. ‘우리즌’은 3월부터 5월까지 장마 직전 시기를 의미하는 단어다. 인구의 4분의 1이 죽은, 1945년 4월 1일에 시작된 오키나와 지상전을 말하는 동시에 지금도 있는 미군기지의 아이러니를 상징하는 말이다. 지금 오키나와에서는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邊野古)이전 저지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지 이전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오키나와 지사가 헤노코 이전 반대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아베 정부와 대립 중이다. 헤노코 연안 매립과 기지 건설이 제주 강정기지 문제와 동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이처럼 지금까지 ‘평화로웠던 일본’이라는 전제는 미군의 군사력을 엔화로 지탱하며 오키나와를 군사기지로 제공한 대가가 포함되기도 한다.
일본의 전쟁법안은 한국의 미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베의 전쟁법안으로 미국이 개입해 일어난 분쟁에 한국과 일본이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본의 행동하는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역사수정주의적 시각을 우려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고영란 일본 니혼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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