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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는 이념 세대 갈등의 뇌관... 강행 땐 큰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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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는 이념 세대 갈등의 뇌관... 강행 땐 큰 혼란"

입력
2015.09.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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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회귀... 시대 역행"

검ㆍ인정제는 민주화 이후 도입,

다양한 역사 관점은 자연스러운 일

분단 특수성? 학습부담 감소?

단일 교과서로 반공학습 악용 우려

학생들도 큰 흐름보다 단순암기 매몰

도입 자체 실익 없어

보수ㆍ진보 간 또 다른 갈등 부채질

인접국과 역사 논쟁서도 오리혀 불리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두고 역사학 교수들과 일선 교사,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역사학계의 원로들과 사회학자들까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 근거로 제시한 ▦좌파교과서 난립 ▦학습량 감소 ▦남북분단특수성 등이 설득력이 전혀 없는데다 사회적ㆍ외교적으로도 실익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ㆍ여당의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역사를 돌이키려는 시도”라며 제동을 걸겠다는 움직임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ㆍ여당의 자가당착

이명박 정부 당시 국사편찬위원장(2010~2013년 재임)을 지냈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국사학과) 등 역사학계 원로들은 1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시대를 역행한다는 지적을 극복하긴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검ㆍ인정 제도는 민주화 이후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도입된 만큼, 국정화를 통한 과거 회귀를 한국사회가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2003~2006년 재임)은 ‘역사학계 및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정부ㆍ여당의 주장에 대해 “지금 교과서들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 검ㆍ인정된 교과서”라며 “이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라고 말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한국사학과)도 “역사를 보는 관점 및 해석에 따라 다양한 주장과 교과서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한 가지로 통일할 경우 역사관을 단순화 시키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밝혔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북한과 대치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념ㆍ사상적으로 통일된 단일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유신시대 국정교과서가 체제 유지를 위한 반공사상 학습에 이용됐던 과거가 다시 재현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단일화된 국정 교과서 되레 학생 부담 가중

국정화로 학생들의 학습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교육당국의 주장과 관련해서도 학생과 학부모를 호도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하나의 교과서에서 시험을 보게 되면 지엽적인 부분까지 외워야 하는 등 불필요한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인철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은 “변별력을 내기 위해 시험은 사소한 부분에서 내게 되고 학생들은 역사해석과 흐름을 익히는 것이 아닌 단순암기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과서의 오류가 줄어들 것이란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 검인정 체제에서 정부가 허가한 교과서의 오류가 많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정교과서로 수능 혼란을 줄여야 한다”는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언급과 관련, 이만열 전 위원장은 “그 논리대로라면 수학ㆍ영어 등 기존 필수과목도 국정교과서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현재 검ㆍ인정제도를 통해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태진 교수는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가 있다면 집필기준을 강화해 출판사들이 넣도록 하면된다”며 “국정화는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키우고 역사인식의 편향성을 심화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ㆍ외교적 실익 없어

국정교과서 도입으로 될 이익보다는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보수ㆍ진보 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문제는 이념 세대 갈등 등으로 증폭될 수 있는 고약한 뇌관”이라고 지적한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에 충성하고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사람을 길러낸다는 발전시대 역사관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인식 하에 이런 작업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과)도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 되면 사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건강하게 표출할 가능성을 억압하는 셈”이라며 “이런 일방통행이 갈등을 키우고 언젠가는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ㆍ일본 등 인접국가와의 역사 논쟁에서도 외교적 이득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만길 교수는 “동북공정,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에 있어 두 나라의 문제점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려면 국정화 체제가 불리할 수 밖에 없다”며 “국제사회에 ‘한 가지 역사를 가르치는 나라’로 인식되면 이런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집필거부ㆍ불채택 운동도 예고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국정화 추진에는 추가 반발도 예상된다. 교과서 제작은 물론 설사 제작되더라도 불채택 운동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일식 교수는 “정부방침 대로 2017학년도부터 중ㆍ고교에 적용하려면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교과서가 완성돼야 하는데 지금처럼 학계의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집필에 참여할 학자를 모으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역사학자 1,167명과 서울대 5개 역사학과 교수 34명 등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은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이 망라된 것이다. 전국 17명의 시ㆍ도교육감 중 15명이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교육감들의 성향을 막론하고 반대 목소리가 높은데도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0%대 채택율로 끝난 뉴라이트 사관의 교학사 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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