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 ‘상(床)을 닦으며’
임술랑
상을 닦다 보니
당신 얼굴이
이 상에 비치는 듯 하오
겸상을 하고
세상을 건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상
상을 닦다 보니
당신 얼굴이 까만 옻칠한 그 속에
은은히 새겨져 있는 듯 하오
깨끗한 행주로 쓰윽
그 얼굴을 훔치니
사무쳐 눈물이 가득
행주에 머금는 듯 하오
당신과 나
나와 당신
시인소개 임술랑(사진)은 1959년 경북 상주 출생으로,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2003년 계간 ‘불교문예’ 시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작가회의, 상주작가,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이며 2006년 시집 ‘상 지키기’, 2014년 시집 ‘있을 뿐이다’가 있다.
해설 김인강
상(床)이란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밥상이 떠오른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 앉아 눈빛을 주고받던 밥상.
서로의 얼굴을 부빌 수 있는 그 상 앞에선
현실을 얘기하고, 미래를 꿈꾸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나온 세월 녹아내리는 삶을 함께 땀 흘리며 울고 웃던 당신.
세월의 강을 넘어 불현듯 떠오르는 그 시간들을
반지르르 윤기 나는 까만 옻칠한 상 위에서 만났다.
거안제미(擧案齊眉), 남편을 깍듯이 공경했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상(床)위에 함께 담겨 있었기에,
헹주로 상을 훔치는 순간,
정겨운 당신이 아련히 다가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당신이 나이고 내가 당신인 안식처 같은 상(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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