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늘어난 대체·해외투자
저금리 장기화하자 공격적 운용
3대 연금, 작년 대체투자금 49조원
위험관리 부족해 우려도 커
국내 연기금들이 대체투자 및 해외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채권 위주의 기존 기금운용 방식으론 목표한 수익률을 충족할 수 없다는 계산에 따른 투자기조 변화다. 분산투자를 통한 수익률 제고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연금 수급자들을 위해 기금 안정성을 우선시해야 할 기관들이 충분한 검토나 대책 없이 위험투자에 뛰어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대체ㆍ해외투자 비약적 확대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3대 연기금(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이 국내외 대체투자에 배정한 투자자금은 지난해 말 현재 49조원으로, 2012년 말(34조원)에 비해 15조원 늘었다. 각 연기금 투자자산의 10~15% 수준이다. 해외투자(주식ㆍ채권ㆍ대체투자 합산)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서 2012년 말 65조원에서 지난해 말 114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공제회인 교직원공제회는 같은 기간 대체투자는 48%, 해외투자는 164% 각각 증가했다. 교직원공제회의 대체투자 규모는 전체 투자자산 대비 40%에 육박한다.
수익률도 채권, 주식 등 이른바 전통자산에 비해 양호하다. 사학연금의 경우 지난 6월 말 현재 벤치마크 대비 초과수익률이 해외 대체투자(4.09%포인트), 국내 대체투자(1.77%포인트), 해외주식(1.87%포인트) 순으로 높았다. 국민연금 역시 투자자산별 최근 3년(2012-2014) 수익률을 비교하면 해외주식(13.0%), 대체투자(8.3%), 해외채권(5.9%)이 국내 채권(5.0%) 및 주식(1.8%)을 앞질렀다.
이렇다 보니 각 기관마다 경쟁적으로 대체·해외투자 운용 인력 충원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해당 부문 자산운용 전문가 30여명 채용계획을 발표했고, 우정사업본부 역시 해외 및 대체투자 부문 실적 향상을 위해 인력 확보에 나섰다. 앞서 지난해엔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교원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주요 기관들이 일제히 해외투자 전담 조직을 신설하거나 확대 개편했다. 한 시장 관계자는 "기관들이 앞다퉈 해외투자나 대체투자 전문가 확보에 나서면서 인력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리스크 관리체제 부족
국내 연기금들이 전통자산에서 눈을 돌려 투자다각화를 본격화한 시기는 4, 5년 전부터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금융시장 변화가 계기가 됐다. 변진호 이화여대 교수는 "주식ㆍ채권 위주 투자전략이 금융위기를 거치며 손실 또는 수익성 저하를 초래하면서 대체투자를 통한 위험분산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며 "국내시장이 협소한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대체투자 대상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주요 투자대상이던 국내 채권 수익률이 연 2% 수준으로 떨어지다 보니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금의 대체투자 확대는 세계적 추세다. 글로벌 투자컨설팅회사 타워스왓슨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 주요 7개국 연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14~29%로, 국내 연기금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기관들이 충분한 준비를 거쳐 투자대상 확대에 나섰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시장 특성상 투자금액 단위가 크고, 주식·채권에 비해 유동성이 부족한 점 등을 감안해 그에 걸맞은 투자리스크 관리 체제부터 갖췄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덕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체투자는 한번 투자하면 회수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계약과정에서 잠재적 위험을 파악하는 등의 사전적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기관들이 사전 리스크 관리를 전담할 부서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연기금 중 대체투자 실패 사례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군인연금의 경우 2007~2008년 대체투자 비중을 늘렸다가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해까지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이어가고 있다. 사학연금 역시 금융위기 국면에서 해외 헤지펀드에 간접투자했다가 원금 대비 20% 이상 손실을 입었던 전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체투자 운용 이력이 오랜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대체투자 자산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 성과평가 및 위험관리 체계를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체투자 대부분이 부동산 자산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질의 투자대상을 찾아낼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인력이 부족해 기존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에 투자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비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김병덕 위원은 "국내 대체·해외투자 중 높은 위탁 수수료 비용 때문에 수익률이 저조한 경우가 많다"며 "캘퍼스(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 등 해외 주요 연기금이 위탁운용 대신 내부 운용역을 두는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대체투자=주식, 채권 등 전통적 투자상품이 아닌 다른 대상에 투자하는 방식. 부동산, 사회간접자본, 원자재, 사모펀드, 헤지펀드, 벤처기업 등 투자 대상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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