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이 또 나올 만하다. 그의 남다른 연기력에 대해 새삼 역시라는 반응이 줄을 이을 듯하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비정한 아비, 조선 영조를 연기한 ‘사도’에서도 송강호는 송강호답다. 쇳소리로 분노와 회한과 욕망을 표출하며 역사의 비련을 깨운다. 관객들은 그의 몸에 의지해 조선 후기 궁중비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사도’가 생성하는 감정의 폭풍의 5할은 그의 몫이다. ‘변호인’(2013) 이후 ‘사도’(감독 이준익ㆍ16일 개봉)로 스크린 나들이에 나설 송강호를 14일 오전 서울 팔판동에서 만났다. 오랜만의 출연작이라 쑥스러웠는지 그는 “2년 만에 이렇게…”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사도’는 충무로의 유행을 거부한다. 노출도 외면하고, 칼 놀림도 나오지 않는다. 사극의 단골소재인 궁중암투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을 죽이게 된 아비와, 숨통을 죄는 듯한 부친의 교육법에 반기를 든 아들의 역사적 사연에 초점을 맞춘다. 시간에 묻힌 한 때를 직시하는 정통사극인 셈이다. 하지만 송강호는 “정통사극이라는 표현은 너무 포괄적”이라며 “정공법이 이 영화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임오화변을 바라보는 이준익 감독의 시선이 내 마음을 가장 많이 끌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치적인 배경보다 군주인 아들과 세자인 아들 사이에 더 시선을 두고 있는 게 ‘사도’의 핵심이고 매력”이라고도 설명했다.
송강호의 사극 외출은 ‘관상’(2013)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사극은 폐쇄적이고 답답하다는 선입견을 ‘관상’ 출연으로 없앨 수 있었다”고 했다. “현대물에서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상상력을 사극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만인지상의 역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답지 않게 ‘합숙훈련’을 하며 영조를 준비했다.
“‘관상’의 내경은 서민적인 인물이라 연기하기 자유로웠으나 아무래도 왕 역할은 부담스러웠다. 이준익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가 정답처럼 표현해주길 원하는 스타일이라 더욱 준비가 필요했다. 극단 차이무 출신 후배 최덕문과 연기 준비를 위해 두 번 정도 조용한 곳에 가 함께 연기 연습을 했다. 말하고나니 좀 부끄럽다(웃음).”
그는 “영조의 비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당파싸움 때문에 죽을 뻔했고 천민 출신 무수리가 어미라 신하들의 비아냥도 받았던 인물이니 아들이 정신 차려서 대권을 이어주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청춘 스타 유아인(사도세자)과는 “서로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라서 오히려 편하게 지냈다”고 했다. “영화 ‘완득이’로 처음 접했는데 조각미남은 아니어도 모성과 연민을 자극하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 매력적인 배우”라며 유아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전했다. “19살 나이 차가 부담 됐는지 유아인이 처음엔 내가 좀 무서웠다고 얼마 전에야 말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송강호는 ‘변호인’으로 1,137만 가량의 관객을 모았으나 정치적인 오해를 사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다는 이유로 일각에선 그의 이름 앞에 좌파, 종북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송강호는 “배우는 단지 어떤 역할을 연기할 뿐 정치적인 해석이나 정치적인 지향을 위해 연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지난 6월 임권택, 봉준호 감독, 배우 최민식 등 4명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첫 한국인 회원이 됐다. 회원은 아카데미상 수상작(자) 선정 투표에 참여한다. ‘사도’는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에 의해 아카데미상 외국어상 한국영화 후보로 선정됐다. ‘사도’가 최종 후보에 오르면 송강호는 자신의 영화에 한 표를 행사할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송강호는 “그런 상황이 오면 오히려 냉정하게 좋은 작품에 투표할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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