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드 파리 별세
불법 이민자로 미국에 와 걸인으로 살았던 시련을 딛고 일어나 반세기 동안 대통령의 양복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활동했던 조르주 드 파리가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1세. 이날 AFP통신 등에 따르면 드 파리는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숨을 거뒀으며 사인은 2년 전부터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진 뇌종양이었다. 드 파리의 친구인 디마시토 페레이는 “그는 숨지기 두 달 전까지도 워싱턴 자신의 양복점에서 일을 계속해왔다”고 AFP에 밝혔다.
1950년대 미국인 여자친구와 함께 미국에 온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 드 파리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곧 걸인 신세로 전락했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던 그는 6개월 이상 빈털터리로 백악관 인근 공원과 주차장에서 밤이슬을 피하며 구걸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프랑스에서 재봉기술을 배운 드 파리는 이후 프랑스계 캐나다인 재단사가 운영하는 양복점에 취직하게 됐고, 주급 70달러를 받으며 자신의 양복점을 개점할 종잣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AFP는 “단칸방을 얻은 그는 재봉틀을 살 돈을 마련할 때까지 최대한 절약하며 절치부심했다”고 전했다.
어렵게 시민권을 획득하고 개업을 한 드 파리는 60년대 초 오토 패스먼 하원의원을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옷을 지어주게 됐다. 이는 드 파리가 백악관과 가까워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옷에 만족했던 패스먼 의원이 당시 부통령이던 린든 존슨에게 드 파리를 소개해줬고, 결국 드 파리는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서거 뒤 존슨 대통령을 시작으로 백악관의 주인들에게 잇달아 양복을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2002년 인터뷰에서 드 파리는 경호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들의 옷을 가봉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하며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가장 친근하고 고상한 이미지를 풍겼다”고 밝혔다. 또 “대화를 좋아하던 레이건 대통령은 바늘에 찔릴까 항상 두려워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에 대해선 “언제나 말이 없이 조용했다”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요구하는 게 많고 차가웠다”고 평가했다.
AFP는 “말년에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드 파리는 일을 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새벽에 가게로 나와 불을 켠 후 집으로 돌아갔다”라며 “해가 질 때쯤 다시 가게로 온 그는 마치 온종일 일을 한 것처럼 등을 끄고 퇴근을 했다”고 드 파리의 20년 지기의 말을 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