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인의 수난사, 청 병합이래 245년 간 독립투쟁
국단적인 테러로 저항… IS 가담 시리아·이라크 내전도 참여

지난 3일 중국은 열병식 행사를 통해 군사굴기를 선언했다. 중국이 목표하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실현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는 중국에 이웃한 우리에게 매우 절박하고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그 미래를 그려보는 데 있어 위구르 민족문제는 의미 있는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 지난달 방콕에서 발생한 에라완 사원 폭탄테러의 범인을 태국 당국은 위구르 테러조직인 동투르크이슬람운동(ETIM)이라고 발표했다. 폭발 사건 직후 글쓴이는 위구르 테러세력을 유력 용의자라고 생각했다. 그 추정의 근거는 이렇다. 먼저 공격목표가 중국인들이었다. 위구르 테러리즘의 주요 타깃은 중국정부와 중국인이다. 사용된 폭탄의 종류와 위력 그리고 폭탄테러를 위한 준비과정과 공격대상 설정, 그리고 시간대 등을 고려해 볼 때 조직적인 작전과 지원, 기획 등을 필요로 한다. 즉 전문테러세력의 소행이다. 또 폭탄테러사건 이후에 스스로 벌인 일임을 밝히는 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의 관찰에 따르면 위구르 테러조직들은 테러사건 이후에 자신들의 행위임을 주장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중국 정부가 보복으로 위구르인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 추정한다.
위구르인들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지역에 기반을 둔 민족이다. 이들은 우리 역사에 돌궐족으로 알려진 터키계 민족이다. 터키 민족들은 위구르를 포함하여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리고 터키까지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에 넓게 퍼져있다. 이들은 우리 한민족과도 인류학, 언어학적으로 매우 동질적이며 고구려 시절부터 유연이라는 투르크 국가와 수-당 등 대 중국 견제를 위한 긴밀한 동맹관계를 형성하였다. 문화적, 종교적으로 위구르인들은 다른 터키 민족과 같이 이슬람 종교와 문화를 유지해 왔다.

흔히 위구르 테러리즘을 알 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글로벌 이슬람 극단주의의 한 분파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01년 9ㆍ11테러를 기회로 이용해 중국은 수세기에 걸쳐 계속되는 위구르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구르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면서 이를 대테러 전쟁으로 포장했다.
미국과 서방의 대테러 전쟁을 지지해주는 대가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집단에 위구르 독립 세력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위구르 민족독립운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의 등장 훨씬 이전부터 이어져 온 문제다. 역사적으로 1759년에 청 제국이 동 투르키스탄을 병합하고 신장(새로운 국경지대라는 의미)이라 이름 붙인 이래 약 245년 동안 위구르인들은 독립투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20세기 이후 1931~34년, 그리고 1944~49년 두 차례 동 투르키스탄 공화국으로 잠시 독립했었으며, 1949년에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정복된 이후로 지금까지 소수민족으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병합직후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겠다는 마오쩌뚱(毛澤東)의 선언과는 달리 지난 40년간 중국 한족(漢族) 정부는 일관되게 위구르인들을 중국문화에 동화시키고 이 지역을 중국에 통합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서방제국주의에 비해 중국의 제국주의가 훨씬 더 폭압적인 것은 한족 이주정책과 민족말살정책, 그리고 국가 테러리즘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전략적으로 한족을 위구르 지역으로 대량 이주시켜 위구르 인들을 소수 잉여 원주민들로 전락시킨다. 1940년대에 위구르 지역의 한족 비율은 5%에 불과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이 비율이 40%까지 증가했다 (위구르 인구는 약 1,000만명에 달한다). 한족은 지역의 정치와, 행정, 치안, 경제, 비즈니스 등 주요 부문들을 장악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위구르인들은 주변 시골지역으로 밀려났다. 위구르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언어 등은 금지되거나 규제된다. 예를 들면 수염을 기르거나 베일을 머리에 쓰는 행위 등은 금지되며 처벌의 대상이 된다. 최근에는 이슬람 종교행사의 핵심인 라마단 의식도 금지되었다. 정치적 시위 등은 총기사용을 포함한 강경한 법집행으로 진압되며 반 중국 또는 친 위구르 활동은 제대로 된 형사절차 없이 체포, 구금, 또는 사형된다. 2014년 위구르 경제학자 일함 토티는 위구르 문제를 웹사이트를 통해 논의했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 또는 분리주의자로 기소돼 중국법원에 의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또 위구르의 상황은 중국정부에 의해 철저히 외부세계와 차단된다. 외국인은 위구르 자치지역에 통행이나 방문이 거의 불가능하며 방문 시에는 철저히 조사되고 감시된다. 때문에 위구르에 관한 대부분의 뉴스는 오직 중국의 관영언론을 통해서만 외부세계로 전달된다. 중국이 위구르 지역 장악에 이처럼 애를 쓰는 이유는 이 지역에 석유와 가스 등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으며, 중국 영토의 6분의 1에 달할 만큼 크고 또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위구르 테러리즘은 이런 중국의 폭압적 국가테러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ETIM은 이러한 위구르 테러리즘의 중심에 있다. ETIM은 1999년에 투르키스탄이슬람당(TIP)로 이름을 변경했다. 대부분 위구르 테러리즘은 1990년대 초, 중반 이전에는 중국 관공서나 경찰 등과 같은 중국정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목표는 위구르 지역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위구르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이 위구르 민족주의 운동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 등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국제적으로 연대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의 성격을 띠게 된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강경진압과 토벌로 많은 위구르 저항세력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태국, 터키 등으로 망명했다. 이 결과 터키와 태국, 그리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에 ETIM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파키스탄에서는 알 카에다와 IMU 다음으로 세 번째로 가장 강력한 외국계 테러세력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최근의 방콕테러는 중국의 압력을 받은 태국정부가 터키로 망명하기 위해 불법 입국한 위구르인 109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데 대한 보복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도됐다. 올 7월 터키에서 터키 시위대에 중국인으로 오해 받아 한국인 관광객들이 공격받은 사건은 중국의 위구르인 탄압에 대한 보복과 관련이 있다.
해외로 망명한 위구르 세력들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 파키스탄 탈레반, 그리고 IMU 등으로부터 자금과 무기, 훈련 등의 지원을 받으며 글로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네트워크와 결합됐다. 이 과정에서 점차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이 짙어지게 되고 민간인에 대한 자살폭탄테러와 무장공격과 같은 알 카에다 식의 테러전술을 채택하게 된다. 급기야 2008년부터는 위구르 테러가 중국 민간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2008년 상하이와 쿤닝에서의 버스 폭탄테러, 2013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 차량폭탄테러, 2014년 우룸키와 쿤밍에서 일어났던 철도역 폭탄테러 등이 그와 같은 사례들이다. 지난달 방콕 테러사건은 이러한 알 카에다식 테러전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돼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위구르인들이 IS에 가담해 시리아와 이라크의 내전에 참여하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이들 가담 인원은 200~300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테러리즘 전문가들은 기껏해야 20~30명에 불과한 수준이며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풀렸다고 평가한다. 공식적인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이들 위구르인들은 위조 터키여권을 사용해 중국을 떠나 IS에 가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 수는 터키와 같은 해외로 망명이나 이주를 원하는 단순난민들이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IS와 ETIM과 같은 위구르 테러세력과의 긴밀한 연대에 대한 증거는 없다.
위구르 테러리즘은 민족문제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 제국주의와 국가테러리즘 등이 만들어내는 복합적 결과물이다. 그리고 중국식 제국질서에 편입된 소수민족의 고난과 부침을 보여준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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