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베어링 제조사 日미네베아
8년간 2위 업체인 일본정공과 함께 한국시장 점유율 유지하려 짬짜미
삼성ㆍLG도 담합에 끌려 다녀 씁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일본의 중견 베어링 회사의 담합에 질질 끌려 다닌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한동훈)는 일본의 정밀 부품생산업체 2곳이 국내 주요기업에 납품하는 소형베어링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 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사건은 국제 카르텔이 국내에서 재판을 받는 첫 사례이다.
문제가 된 일본 업체는 세계 1위 소형베어링 생산업체인 미네베아와 세계 2위 일본정공. 검찰은 이 가운데 미네베아 일본 본사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일본정공은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로 처벌에서 제외했다.
검찰에 따르면 미네베아는 일본정공과 짜고 2003년 6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에 납품하는 소형베어링의 가격을 8년간 담합한 혐의다. 자동차의 바퀴 축 등 회전하는 굴대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베어링은 산업기계, 가전제품 등 다양한 제품에 필수 부품으로 쓰인다. 전자제품과 건설기계에 쓰이는 소형베어링은 0.00001㎜ 단위까지 계측·제조하는 정밀기술이 필요한데, 일본 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한국시장에서도 2012년 현재 미네베아(56.3%) 일본정공(24.2%)이 모두 80.5%를 차지해 ‘공급자 지배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미네베아 등이 우리 기업에 연간 1억4,000만개 납품하는 소형 베어링은 지름 1㎜ 가량의 고강도 구슬을 다수 넣는 초정밀 기술이 요구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네베아는 지난해에만 4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검찰은 2003년 6월초 국내 업체들의 가격인하 요구에 직면하자 두 기업이 처음 담합을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미네베아 본사의 베어링 통괄부장 M씨와 일본정공 전기정보부장 N씨는 일본 도쿄의 커피숍 ‘반’에서 만났다. 결국 두 업체는 소형베어링 가격을 개당 0.5달러씩 각각 동일하게 내리기로 담합, 매출 감소를 최소화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다.
이후 두 기업은 철강 원재료 가격이 상승한 2008년 4월에는 5~13% 가량 가격을 공동 인상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원화 대비 엔화 환율이 오르자 역시 담합을 통해 20~33% 선으로 가격을 동시 인상했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은 대안이 없는 상태라서 이들이 제시한 담합한 가격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미네베아와 일본정공 고위 임원을 한국으로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담합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던 미네베아는 검찰 압박이 거세지자 혐의를 인정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2002년 흑연전극봉 담합사건 등에서 외국업체들의 담합행위를 조사한 적이 있지만 과징금·시정명령 처분에 그쳤다. 검찰 관계자는 “국제카르텔을 우리 검찰이 수사해 형사처벌한 최초의 사례라 의미는 있다”면서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들조차 이들에게 끌려 다닌 현실을 확인한 것은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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