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6일 서울 송파구 한 빌라에서 40대 남성이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해 살해한 후 시신을 장롱에 숨겼다. 수사결과 최근 급증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렇다면 신종 범죄로 주목 받는 데이트 살인은 얼마나 될까. 경찰청 관계자는 13일 “개별 사건마다 범행동기를 기재하고 있으나 범죄 유형과 동기를 교차 분석해 현황을 파악하는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통계를 집계할 수 없다는 얘기다.
보이스피싱, 모조 명품(짝퉁) 제작, 장기매매 등 범죄는 날로 진화하고 있지만 이를 분석해 적절한 치안 수요를 예측하는 범죄통계 시스템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2004년 범죄정보관리시스템(CIMS)을 구축하면서 수기로 작성하던 범죄통계원표를 전산화해 범죄 유형, 범행 동기, 피의자 신상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게 했다. CIMS는 2010년 5월 검찰과 함께 사용하는 형사사법포털서비스(KICS)에 통합돼 현재까지 운용 중이다. KICS는 도입 후 유형별로 세분화된 범죄정보 덕분에 신속한 범인 추적이 가능해지는 등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법령 제정에 따른 유형만 단순히 늘렸을 뿐, 해당 범죄에서 파생되는 범행 동기, 수법 등은 전혀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신종 범죄의 실태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이 13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지난해 ‘범죄통계 분류 유형’을 보면 경찰은 범죄유형을 강력 폭력 절도 등 15개 대분류와 39개의 중분류, 459개의 소분류로 구분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도 3개 법안, 32개 소분류 유형이 추가됐다.
가령 소분류에 추가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중 상습유사강간, 상습강제추행 등은 범인 특성을 분석하는 일이 예방대책 마련에 핵심 요소지만, 이와 관련된 기존 사건을 살펴보려면 일일이 조회를 해야 한다. 올해 2월 발생한 화성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강신명 경찰청장은 “폭력, 가정폭력 등 전과가 있는 경우 총기소지 허가를 제한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 역시 전과 유무는 총기소지자의 관할 경찰서에서 개별적으로 파악해야 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데이트 폭력, 보복 운전 등 한창 이슈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윗선에서 특별 단속 지시를 내리고, 해당부서에서 각각 담당 사건을 취합해야 대강의 통계가 나온다”고 말했다.
검경도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있지만 대책 마련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은 대검찰청이 명시한 죄명 예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신종 범죄유형을 분류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드는 등 형사사법 환경이 급변하면서 신종 범죄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중기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도 “예산 배정에 어려움이 있어 실행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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