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법정 위증사범 104명 적발
작년 같은 기간의 3배 가량 늘어
연고주의·의리 중시 사회분위기 탓
"인정·신분관계가 동기" 74% 달해
사기· 다단계 등 경제범죄서 빈번
檢 "조직적·계획적 위증 폐해 극심
적발 땐 원칙적으로 정식재판"
마카오에서 필로폰 5.6g을 밀수해 투약ㆍ판매한 A씨가 구속된 데는 B씨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B씨는 법정에 서자 갑자기 말을 번복했다. “A씨가 필로폰을 밀수했다는 말은 전혀 들어본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 것이다. 뒤통수를 맞은 검찰은 공소유지가 어려워지자 추가조사를 진행했다. 재수사 결과 A,B씨가 편지로 필로폰 밀수를 논의했고, 두 사람이 동거관계인 사실까지 탄로났다. 마약 전과가 있던 동거녀의 조기 출소를 위해 허위 증언을 했다 꼬리가 잡힌 것이다.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B씨는 다른 사실까지 털어놓아야 했고, 이 바람에 A씨에게 중형에 선고된 것은 물론 도주 중이던 다른 공범까지 검거됐다.
재판에서 거짓을 말하는 위증사범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판부는 올해 1월부터 이달 10일까지 법정에서 적극적인 허위 증언을 한 위증사범을 집중 단속한 결과 총 104명(구속 6명)을 적발, 57명을 정식재판에 넘겼다고 13일 밝혔다. 전년도 같은 기간 동안 적발된 위증사범(34명)에 비해 3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형법상 위증죄는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하의 중형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위증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인정에 얽매여’, ‘지위와 신분관계 때문에’가 가장 많았다. 검찰 분석결과 이 같은 한국인 특유의 연고주의나 온정주의, 의리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위증을 한 경우가 무려 74%나 됐다.
특이한 것은 위증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는 사건이 사기ㆍ다단계 등 경제범죄(42.3%)란 점이다. 이른바 폭력세계의 의리 때문에 위증을 한 경우는 그 다음이었다. 경제범죄의 위증사범은 44명인 반면, 폭력범죄 사건은 29명이었다. 우리사회에서 통상 상급자에게는 의리와 온정주의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위증을 하는 경우도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금융하이마트’라는 다단계 업체의 총괄회장을 지내던 최모(52)씨는 2013년 6월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자 무려 19명의 직원으로 하여금 위증을 하도록 했다. 직원들이 “‘바지사장’이던 김모(52)이사가 실질적인 운영자”라며 법정에서 최씨를 비호하는 동안 최씨는 사업을 확장하며 930억원에 달하는 유사수신행위를 이어갔다. 직원들은 최씨와 ‘한 배’를 탄 만큼 그의 처벌과 자신들의 이익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들이 전화 통화를 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증과 조작극은 막을 내렸다. 임석 전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의 차명계좌를 관리하다 “증여 받은 것”이라고 위증한 이모 전 경영지원본부장은 “20년간 사주로 모신 임 전 회장을 돕겠다는 생각에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통합범서방파 조직원 4명은 조직원이 집행유예 기간 중 다시 범죄단체 가입ㆍ활동 혐의로 기소되자 “조직원이 아니며 범서방파 가입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고 의리를 지키려다 위증혐의로 줄줄이 기소됐다.
위증을 한 구체적 동기로는 피고인과 친족관계 또는 친구 관계 등 인정에 얽매인 경우가 49%(51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위 및 신분관계에 의한 위증(25%), 거짓말을 해 준 대가로 재산상 이익을 약속 받는 등 경제적 목적을 위한 위증(21.2%) 등도 뒤를 이었다. 사건의 피해자가 피고인과 합의가 됐다는 이유 등으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취지로 거짓 증언을 한 경우(2.9%)도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위증사범, 특히 조직적ㆍ계획적 위증사범의 폐해가 워낙 심해 적극 단속해 엄단하겠다”며 “적발시 원칙적으로 정식 재판에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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