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늑장 출동 탓에 막을 수도 있었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아들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박모(64ㆍ여)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전날 밤 9시40분 한남동 자택 앞에서 아들 여자친구인 이모(34)씨와 말다툼을 하다 이씨의 가슴 부위를 흉기로 한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말다툼 도중 이씨가 손가방을 던져 화가 나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조사 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은 이날 저녁 전화로 크게 싸웠고, 박씨는 이씨가 따지러 온다고 하자 미리 흉기를 준비해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사건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 경찰은 박씨를 상대로 보강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하지만 경찰의 미숙한 대응이 이씨의 죽음을 막지 못한 원인으로 확인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 현장에 함께 있던 박씨 아들은 오후 9시12분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령을 받은 파출소 순찰차는 10분 전 근처에서 들어온 가정폭력 사건과 같은 건으로 오인하고 시간을 지체했다. 박씨 아들은 오후 9시27분 재차 출동을 독촉했으나 경찰은 계속 같은 사건으로 오인했다.
결국 해당 순찰차 경찰관들은 오후 9시37분이 돼서야 차량 네비게이션에 뜬 사건 정보를 인지했고, 신고 30분 만인 오후 9시42분 현장에 도착했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경찰 도착 직전 박씨가 이씨를 흉기로 찌른 것으로 나타나 경찰이 제때 출동했다면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경찰은 출동 경찰관들과 파출소 근무자 등을 상대로 감찰 조사를 한 뒤 책임 소재를 가릴 예정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유를 떠나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진상조사를 통해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상응하는 문책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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