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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베보다 과감해서야

입력
2015.09.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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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23일자 한국일보 1면 톱 기사 제목은 ‘國史敎科書를 國定으로’였다. 도입 이후 줄곧 검인정이던 교과서 제도가 이때 처음 '국정'으로 바뀌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8개월만에 나온 조치다.

기사 몇 대목을 인용해보면 이렇다. “문교부의 이번 조치는 각급교 국사교과 독립 및 시간 배당 기준 강화, 대학입학 예비고사 및 공무원 임용시험에서의 국사 교과목 추가 등 일련의 국사교육 강화책에 뒤이은 것으로, 문교부가 올해의 교육 목표로 정한 ‘국적 있는 교육’을 더욱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새 교과서에는 ‘주체적 민족사관 정립’ ‘새 한국인상 형성’ ‘한국민주주의의 토착화’ 등 문교부의 교육방침이 반영되고….”

사회 민주화와 함께 비로소 검인정 체제를 회복한 교과서를 채 10년도 안 돼 다시 국정으로 되돌리려 하면서 대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는 최근 국감 보고에서 국정 전환 검토 이유를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합의된 보편적 이념과 가치교육에 효과적이며 국민통합과 균형 있는 역사인식 함양”에 바람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정을 포함한 발행 체제 개선 방안으로 ‘올바른 국가관’에 입각한 한국사 교과서 개발을 명시했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 교과서를 발행한 일본은 그 역사나 체제가 닮은 점이 많다. 검인정ㆍ국정도 마찬가지다. 최초 자유발행제였던 일본의 교과서는 신고제를 거쳐 1886년에 검인정 제도로 정착했다. 이를 국정으로 전환한 것은 1903년이었고 이 체제가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이어진다. 일본이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던 시기가 어땠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주변국을 침탈해 식민지로 착취하고 결국 전쟁까지 일으켰던 당시 군국주의 권력에게는 ‘올바른 국가관’에 입각한 ‘국적 있는’ 일사불란한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 생각대로 과연 올바른 교육이었는지, 그리고 올바른 교육 체제였는지 부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일본의 교육과 교과서 발행은 자위대의 군대화,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보수 아베 정권에서 이즈음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사회의 우경화와 함께 전쟁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이라고 몰아붙이며 우익 수정주의 역사관을 펼치는 후소샤, 이쿠호샤 역사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가 서서히 늘고 있다. “일본인의 정체성 확립”을 이유로 전후 사라졌던 도덕 교과를 부활시키고 있다. 교과서 내용이 판례나 내각 결정 등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방침과 어긋나는 내용을 담지 못하도록 검정도 강화했다.

젊은 의원 시절부터 ‘자학사관’을 버리자고 앞장 섰던 게 아베 총리다. 그가 총재로 있는 자민당에는 교육재생실행본부가 설치돼 있고 그 아래 ‘바람직한 교과서 검정 특별위원회’가 있다. 이 위원회에서 2년 전 낸 보고서에 이런 아베 정권의 교육 변화에 장단 맞추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보고서에는 ‘국정 검토’라는 말은 없다. 지금 한일 정부의 교육정책은 국가정체성 확립을 내세워 일사불란하게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역사를 거스르는 과거 전체주의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닮았다. 다르다면 한국은 ‘국정’을 아예 논외로 치는 일본보다 훨씬 저돌적이라는 것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아베를 역사수정주의라고 했던 비판이 낯간지러운 일이 될 지도 모른다.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국제분쟁의 이해’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훌륭한 역사가나 사회과학자는 솔직하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다루는 주제와 관련된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선별된 것이란 결국 전체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편견을 조심하라.…역사에 대한 오해를 치유하는 방법은 되도록 많이 읽는 것이다. 더 적게 읽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한 권으로 배워 역사를 약간 오해만 하고 넘어갈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

김범수 여론독자부장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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