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웨일즈 지방의 쇠락해가던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를 매년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책마을로 일군 리처드 부스(77)가 한국에 왔다. 경기 군포시가 11~13일 주최한 2015 군포독서대전에 참석해 12일 군포중앙공원의 책 평생관에서 강연을 했다. 군포독서대전은 책 읽는 군포를 표방한 군포가 2010년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독서진흥 전담 부서를 설치하면서 매년 가을에 여는 책 축제다. 올해도 군포중앙공원과 산본로데오 거리를 중심으로 강연, 토론, 전시, 공연, 체험 행사, 북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13일 숙소인 안양의 작은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부스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났다. 10년 전 뇌종양 수술 후 몸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건강은 좋다고 했다.
군포의 책 축제를 본 소감을 묻자 그는 “마치 천국의 결혼 같다”며 대만족을 표시했다. 이 행사가 상업적이지 않고 책 자체에 집중하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2011년 파주출판도시 초청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방한도 올해 5월 유럽 책마을 답사에 나선 군포 시장 일행이 헤이온와이에 왔을 때 군포 이야기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아 자청한 것이다.
헤이온와이 책마을의 역사는 부스가 대학 졸업 후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온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며칠마다 하나씩 가게가 문을 닫는 마을이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본 그는 비어가는 가게를 책으로 채울 결심을 하고 전세계에서 헌책을 수집했다. 이듬해 싼 값에 예전 소방서 건물을 사서 첫번째 서점을 차렸고 버려진 건물, 무너져가는 낡은 성, 창고 등으로 헌책방을 늘려나갔다. 얼마 못 갈 것이라며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1977년 만우절에 헤이온와이를 ‘책의 왕국’으로 선포하고 스스로 ‘서적왕 리처드’로 취임했다. 덕분에 홍보가 더 잘됐다. 서점을 차리는 사람과 방문객이 늘면서 마을이 살아났다. 현재 헤이온와이는 약 40개의 헌책방이 있다. 1988년부터는 책축제 ‘헤이 페스티벌’도 시작했다. 매년 5월 말 열리는 이 행사는 BBC, 스카이, 가디언 등 영국의 주요 언론사가 후원하고 해마다 7만명 이상이 찾아온다. 헤이온와이를 벤치마킹한 전세계 책마을도 50개쯤 된다.
하지만 헤이축제 파트너인 대중매체, 특히 BBC와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스카이 TV에 대해 그는 매우 부정적이다. BBC와 머독이 참여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게 불만이다. “정말 화가 나요. 헤이온와이는 헌책방마을인데, 그들은 헌 책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그저 대중매체나 유명세를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헤이온와이의 성공 비결은 민주주의인데, 정치와 돈이 연결되면서 사이비민주주의가 되어버렸어요.”
새 책이 아니라 헌 책과 평생을 함께 해온 그에게 왜 헌 책이냐고 물었다. “새 책은 저자의 유명세로 파는 내수시장용인데 비해 헌 책은 국경을 넘어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국제경제이고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죠. 유럽과 미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버려지고 있는데, 책 한 권도 몹시 소중한 아프리카의 가난한 마을에 이 책들이 가서 헌책방이 만들어진다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오미환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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