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전, 시인을 만나러 대구에 간 적 있다. 아파트 단지 안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를 인터뷰하는 건 의외로 쉽고, 뜻밖에 난감하다. 질문지 따위 따로 필요 없다. 그저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를 받아 적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다 보면 그의 눈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코로 나왔다가, 짐짓 입언저리에서 길을 찾는 듯싶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이내 그의 손 안에서 쥐락펴락 움찔거리는 형국이 된다. 그게 낯부끄러운 듯 통렬하다.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얘기의 정경은 바다 속 같기도, 산 정상 같기도 하다가 다시 정색하고 얼굴 마주보면 그저 뻔하고 누추한 삶의 현(現) 자리가 돌연 줌인 된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하건대, 하관이 빠르고 갸름한 그의 얼굴은 언뜻 여우상이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 들어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시집 ‘그 여름의 끝’의 배경이었다는 작은 산을 올랐다. 띄엄띄엄 주고받은 대화가 주로 불교 얘기였다. 대화가 멈춘 자리는 그가 낮게 흥얼거린 뽕짝 가락이 메웠다. 시의 가장 먼 자리와 가장 가까운 자리가 줄다리기하듯 오고 갔었다는 기억이다. 산을 내려와서는 렌즈 앞에 우뚝 선 그의 전신을 카메라에 담았다. 돌부처 같기도, 해골 같기도, 처음 봐 몸 한 구석을 서늘케 한 어떤 여자 같기도 했다. 시의 몸이었을까. 아니, 시가 들춰낸 한 사람의 살아있는 형해였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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