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란 쿠르디. 터키 바닷가 모래밭에 얼굴을 묻고 잠든 아이. 빨간 셔츠, 파란 반바지, 봉긋하게 솟은 엉덩이, 창백한 이마를 간질이는 무심한 파도, 철지난 바닷가에 버려진 조그만 인형 같은 주검. 가짜 구명조끼를 입고 작은 고무보트에 매달려 목숨을 건 항해를 해야 했던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지바. 작은 고깃배에 실려 망망대해를 떠도는 아이. 아마도 여섯 살, 어쩌면 일곱 살 아프가니스탄 난민. 파도가 칠 때마다 끼이익, 끼이익 비명을 지르는 낡은 배에 짐짝처럼 부려져 두고 온 고향을, 헤어진 아빠를,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는 어린 소녀.
전쟁과 테러와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내전으로 국민 절반이 난민이 되어버린 시리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소말리아, 코소보, 수단….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고 다치고, 손때 묻은 세간과 정든 집과 마을이 파괴되고,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고무보트에 목숨을 건다. 대대로 살아온 터전과 정다운 이웃과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와 존엄을 잃고 삶의 기반을 통째로 뿌리 뽑힌 채 낯선 땅을 떠돈다.
리즈 롭트하우스가 쓰고 로버트 잉펜이 그린 ‘지바는 보트를 타고 왔어요’는 총소리, 대포소리에 쫓겨 낯선 땅으로 향하는 어린 소녀 지바의 위태로운 항해를 섬세하고 예민하게 그려낸다. 난민을 잔뜩 태운 낡은 고깃배는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듯 아슬아슬하고, 지바의 기억 속 그리운 고향, 행복했던 기억은 아무리 힘껏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닷가 모래알 같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그리는 잉펜의 솜씨는 언제나 그렇듯 사려 깊고, 담백하고 아름다운 그림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독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지바, 그리고 지바의 아빠를 그린 장면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얼굴, 커다란 눈동자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역광을 받아 그늘진 얼굴의 지바가, 아이를 품에 안은 고뇌에 찬 젊은 아빠가 우리를 빤히 바라본다. 우리 눈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검은 눈동자, 그 눈동자에 비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이 첫 장면과 똑같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여전히 그 자리에 위태롭게 떠 있는 낡은 배. 이 그림책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은 ‘난민’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일란 쿠르디로 바뀌는 순간 우리가 느꼈던 분노와 부끄러움과 참담함처럼 강렬하다.
최정선ㆍ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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