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판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열 중의 아홉은 도시락을 싸 들고 말렸다. 출판의 달인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베테랑 출판인이든, 1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비출판인이든, 한 마음으로 만류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출판업이 저무는 해와 같은 사양산업이란 것을. 출판을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출판계의 일급비밀이 아니라 대한민국 온 국민이 다 아는 상식이라는 것을. 멀쩡히 다른 일로 밥 벌어먹던 내가 밥 안 되는 출판을 시작한다니 그들이 나를 막아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아낌없이 던져주는 우려와 걱정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그들 말로 ‘망할 게 뻔한’ 출판사라는 걸 차리게 되었다.
출판계 출신도 아니고 국내에서 알만한 저자와의 인맥도 전무한지라 첫 번째 책은 번역서로 낼 계획을 세웠다. 분야를 인문, 사회과학 쪽으로 정하고 첫 책을 찾는 탐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국내에 익히 알려진 저자들은 국내 발간되지 않고 남아있는 책을 찾기 힘들었고, 그나마 찾아냈다 해도 번번이 에이전시로부터 “계약되었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세운 전략이 ‘한 권 저자 찾기’였다. 아직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누군가가 한 번쯤은 국내에 소개한 저자를 찾아 영입하는, 일종의 꼼수였다. 그 당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하여 투표하는가’란 책으로 국내에 처음 이름을 알린 토마스 프랭크라는 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존에서 그의 저서를 찾아보니 흥미로운 책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 선택한 책이 ‘Wrecking Crew’이다. 자신의 배를 난파시키는 선원이란 뜻으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집권한 미국 우파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부를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제목이었다. 당시 공공의 정치가 사적인 비즈니스로 변질되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책이라는 판단에 대망의 첫 판권계약을 하게 되었다.
번역원고를 받아 들고 첫 번째 교정을 마치고 나니 기시감에 빠져들었다. 기업과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애버린 규제철폐, 민영화, 예산을 쏟아 붓는 대규모 토목프로젝트….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제인 ‘난파선원들’보다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오르는 제목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이와 같은 우파를 뭐라 규정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비즈니스 우파’란 말을 떠올렸다. 그런데 ‘비즈니스 우파’란 제목은 아무래도 불친절해 보였고 조금 더 친절하게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책을 내고 주변에서 제목을 잘 뽑았다는 칭찬도 꽤 들었다. 전직 대통령이 내게 영감을 주지 않았다면 그런 제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그 분에게 본의 아니게 신세를 졌다.
김정한·어마마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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