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도쿄-시모노세키-부산 육ㆍ해로 3000㎞ 여정 18일 도착
정병호 교수 등 양국 민간 협력 결실
일제강점기 일본 홋카이도에서 강제노동으로 고된 삶을 살다 숨진 한국인 희생자 115명의 유골이 오는 18일 70년 만에 고국 땅으로 되돌아온다. 유골은 홋카이도까지 갔던 여정을 거꾸로 되짚어 3,000㎞에 걸친 육로ㆍ해로로 귀환한다.
그 동안 일제강점기 유골 수습 반환은 더러 있었지만 100위(位)가 넘는 유골이 한꺼번에 돌아오기는 처음이다. 혼간지(本願寺) 삿포로 별원에 합골된 유골 71구, 아사지노(淺茅野) 일본 육군 비행장 건설 당시 희생된 유골 34구, 비바이(美唄) 탄광 희생자 유골 6구, 슈마리나이(朱鞠內) 우류(雨龍)댐 건설공사 희생자 유골 4구 등이다.
이번 대규모 봉환에 애쓴 사람은 18년간 일본에서 한국인 희생자의 유골 발굴에 힘써 온 평화디딤돌 대표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다. 정 교수는 1989년 연구를 위해 홋카이도 현지조사를 하다가 일본 승려인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善彦)를 만나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을 시작했다. 도노히라는 1970년대부터 슈마리나이 우류댐 건설공사 현장에 동원됐다가 숨진 조선인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 1997년 한일 민간단체와 전문가, 학생들이 힘을 모아 홋카이도에 흩어져 있던 희생자 유골 발굴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 작업을 진행해, 광복 70주년인 올해 비로소 결실을 본 것이다. 정 교수는 “변방 숲 속에 무참히 버려진 유골을 조국 땅 가장 밝은 곳으로 모시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유족 7명을 비롯한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한국측 대표 15명은 유골 인수를 위해 11일 오전 일본으로 출국했다. 유골을 가장 먼저 인수하는 곳은 홋카이도 최북단 아사지노 일본 육군 비행장. 조선인 120여명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44년 비행장 건설에 동원돼 ‘문어방’이라고 불린 감금시설에서 굶주림과 구타에 시달렸다. 이어 북부 산간지방인 슈마리나이 우류댐, 비바이의 미쓰비시 탄광 갱 내 가스 폭발로 숨진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는 사찰 조코지(常光寺), 삿포로 혼간지에서 차례로 유골을 넘겨 받는다.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가 뜻을 모아 꾸린 귀향 추진위는 12일부터 사흘 간 한국인 유골을 인수하면서 추도식도 거행할 계획이다.
대표단은 115위를 되찾아 배를 타고 해로로 도쿄로 간 후 거기서는 육로로 교토-오사카-히로시마를 거쳐 시모노세키로 이동한다. 귀향 추진위 관계자는 “해당 경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징용될 때 이동했던 육로와 해로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귀향 추진위는 17일 시모노세키항에서 출발해 대한해협을 건너 18일 오전 부산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합동 장례식은 19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엄수되며 유골은 경기 파주시 서울시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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