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시청 앞을 지나다닌다. 초가을 서울광장은 공연장이었다. 그제 저녁 퇴근길이었다. 색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민들 100여명이 잔디마당에 앉아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커다란 무대가 들어서 있었고, 4인조 미8군 밴드의 연주에 맞춰 장병 한 명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 철근골조의 제법 큰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동안 어떤 행사가 있을 때 만들어졌던 소형 간이무대가 아니었다. 크지 않은 서울광장의 전체가 야외공연장으로 변해 있었다.
▦ 일본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1895년)으로 고종은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했다가 1987년부터 덕수궁에서 지냈다. 이어 황제즉위식을 갖고 정문인 대한문을 중심으로 방사선 도로를 닦으며 ‘넓은 앞마당’을 조성했다. 이 때부터 시청 앞 광장은 고종 보호 시위,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 집회, 6월 민주화 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건의 현장으로 상징돼 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 국민축제의 마당으로 자리잡으면서 지금의 서울광장으로 만들어졌다.
▦ 대청마루에 비친 보름달 모습의 타원형으로 조성됐는데 우리의 국격이나 서울의 위상으로 보아 많이 초라하다. 웬만한 아파트 단지 한 곳 넓이에도 못 미치는 4,000평(13,207㎡)에 반은 잔디로, 반은 화강석으로 덮여 있다. 그나마 상당 부분은 서울시의 ‘야외 청사’로 사용되고 있고, 각종 행사와 홍보를 위한 설치물로 뒤덮여 제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다. 북쪽과 서쪽, 남쪽 인근에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서울역광장이 있지만 이들은 ‘콘크리트 마당’이어서 ‘잔디 서울광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 서울시가 서울광장에 작지 않은 규모의 상설공연장을 설치할 모양이다. 지하에 대기실과 분장실이 들어가고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가 공연할 수 있는 큼지막한 야외공연장이다. 지금의 철근골조 무대는 ‘시범 운영용’이라고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들은 내년 공사착공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음악으로 시민을 힐링하고, 공연으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장소가 굳이 서울광장 밖에 없을까. 서울광장은 서울시가 자신의 마당처럼 마음대로 결정할 공간이 아니다. 상설ㆍ고정 공연장인만큼 긴 안목을 갖고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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