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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강 위에서

입력
2015.09.1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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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인근 산책로를 걷다가 양화대교를 넘어간 적이 종종 있었다. 물을 보다가 물을 건너버린 셈이었는데, 그쪽 산책로가 대개 그렇다. 한편엔 물이 있고, 그 너머엔 뾰족뾰족 건물들이 늘어선 여의도가 (말 그대로) ‘피안’인 듯 떡 하니 펼쳐져 있다. 시선을 강 건너로 던지니 왠지 낯설었다. 자동차나 전철을 타고 넘어갔을 때와는 다른 세상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걷다 보면 걸음걸이에 힘도 붙고 탄성도 생겨 조금 더 나아가고자 하는 충동이 들었다. 결국엔 대교마저 걸어 넘었다. 다리 위에서 보는 한강은 지루할 정도로 강폭이 넓고 물살은 거칠다. 멀리서 보면 완만하고 차분해 보였던 게 작정하고 내려다보면 뭔가 부글부글 끓으면서 안으로 맺힌다. 그때면 차마 뱉지 못할 말들을 당장에라도 토해버리려는 사람과 마주한다. 한번은 해거름에 건너다가 공포에 사로잡힌 적 있다. 노을이 예쁘다 여겨 느릿느릿 다리에 올랐는데, 금세 해가 떨어지면서 발 아래가 거대하고 검은 소용돌이로 급전했다. 들여다보면 분란만 생길 누군가의 뜨거운 속내 같았다. 다리 한가운데서 더 나아가지도 되돌아오지도 못한 채 공연히 나 스스로가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 아연했었다. 그 속이 매우 궁금하나 깊이 살펴 헤아리고 싶진 않았다. 요동치는 물길을 마음에 숨긴 누군가를 문득 떠올렸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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