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관리 등 종사하는 1600여명에 수당 안 주려 "초과근무 기록 말라"
주무관 노조 "月 9시간 통계는 꼼수"… 설문조사 결과 평균 20시간 달해
법 수호 조직이 근로기준법 위반… '무기한 차별직' 서러움만 쌓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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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A경찰서에서 전기ㆍ보일러 시설을 관리하는 무기계약직 이모(42)씨의 초과근무 수당은 ‘0원’이다. 난방과 보일러 사용이 폭증하는 겨울이면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다반사라 초과근무를 얼마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인데도 그렇다. 상사인 경찰이 “예산이 부족하니 초과근무 시간을 기록하지 마라”고 지시한 탓이다. 반면 같은 업무를 하는 정규직 행정관은 초과근무 수당을 꼬박꼬박 챙겨가고 있다.
# 경기 B경찰서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 최모(37)씨는 지난해 전기료가 과다 지급되는 사실을 파악하고 수천만원을 절약했다. 보람도 잠시, 팀장은 “당신은 실적을 내도 혜택이 없으니 동료 경찰의 성과로 돌려 특진을 시켜주자”고 강요했다. 최씨는 “밤을 세워 자료실을 뒤졌는데 남은 것은 서러움뿐”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경찰이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무기계약직을 대거 채용했으나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초과근무 수당도 받지 못하는 등 차별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기계약직이 정년을 보장하기는 하나 고용조건은 여전히 비정규직과 비슷해 ‘무기한 차별직’ ‘반쪽 짜리 정규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2011년부터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목표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찰청과 전국 일선서 249곳에서 무기계약 직원 1,654명이 시설관리, 회계처리, 사무보조 등에 종사하고 있다.
11일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 받은 ‘경찰청 근무신분 별 월 평균 초과근무시간’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경찰 공무원의 월 평균 초과근무 시간은 78.5시간에 달했다. 일반직 공무원도 45.5시간이나 됐지만 무기계약직은 9시간에 그쳤다.
물론 무기계약 직원들만 유독 일을 덜하는 것은 아니다. 무기계약직 노조인 경찰청주무관노조는 이를 통계의 꼼수라고 지적한다. 초과근무를 해도 기록에 남기지 못하도록 해 집계되지 않을 뿐, 같은 업무를 하는 경찰과 근무 시간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청주무관노조가 올해 무기계약직 1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월 평균 초과근무시간은 20시간에 달했다. 전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야근과 특근으로 90시간을 넘긴 경우도 있었다. 안규현 경찰청주무관노조 부위원장은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면 대체휴가라도 써야 하지만 눈치가 보여 연차휴가도 소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차별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과 공무원에게 매달 지급되는 위험수당(5만원) 민원처리수당(3만원) 휴일근무수당(5만7,109원) 피복비(연 20만원) 등의 각종 수당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임금도 적다.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2013년 기준)은 정규직 임금(211만4,310원)의 60%에 불과한 127만430원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늘려주지 않아 수당을 지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초과근무를 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일부 경찰서에서 초과근무 관행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진선미 의원은 “초과근무 수당 지급은 정책적 판단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제56조에 규정된 사용자의 의무”라며 “법을 집행하는 경찰마저 법을 무시하는 현실이 우리나라 노동인권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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