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뇨병 환자입니다. 밥맛이 너무 좋은데 식욕을 떨어뜨리는 약은 없나요?

불과 오십년 전만 해도 전 국민을 배불리 먹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보시면 정말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할 만큼 먹을 것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질병들은 너무 먹어서 생기는 병들이 많습니다. 현대의 평균적인 성인들은 비만이거나 과체중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용을 목적으로 하거나 아니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만을 줄이기 위한 약제가 현대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를 완벽히 조절하는 약물은 없습니다. 식욕을 줄이기 위해 여러 약물들이 시도되어 왔고 많은 약물들이 안전성의 문제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밥맛을 떨어뜨리는 약제는 지금도 많이 처방 되고 있지만 안전 때문에 대부분 3개월 이내로 처방해야 합니다.
2000년대에 많이 처방되던 '시부트라민'이라는 약이 있습니다. 이 약물이 비교적 오랜 기간 처방할 수 있는 약제 였지만 연구 결과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이 약간 증가하는 문제가 있어서 2010년에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식욕을 억제하는 대부분의 약물은 혈압이 약간 올라가고 맥박도 약간 빨라지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이 부작용이 별로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나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는 중년 이상의 분들에게 장기적으로 쓰기에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2012년에 '로카세린'이라는 새로운 약제를 식욕억제제로 쓸 수 있도록 미국 FDA가 허가를 해줍니다. 한국에서는 올 해부터 이 약제가 처방되고 있습니다. 이 약제는 기존의 약물의 문제였던 맥박과 혈압이 상승하는 부작용을 없앤 약물입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있는 분들에게 안전하게 처방할 수 있는 약물이 새로 나온 것입니다. 식욕을 줄이고 싶은 환자를 위해서나 이들을 진료하는 의사를 위해서 분명 좋은 소식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화끈한 식욕억제 작용을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이 약물은 평균적으로 5% 정도의 체중감소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보기에는 5%도 충분하지만 살을 많이 빼고 싶은 분에게는 미흡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제 의견은 식욕은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본인의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식욕까지 약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현대인들이 너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절제라는 덕목을 기대하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맛있어 하는 음식으로만 배를 채우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맛은 덜하지만 골고루 먹을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들에게만 골고루 먹으라고 하고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 어린이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이 어떤 분들에게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온전히 약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식욕입니다.
최일훈 원장은 대전 '새서울내과 영상의학과 의원' 원장으로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주 진료과목은 전반적인 당뇨.
채준 기자 dooria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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