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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암살'과 '베테랑'의 저녁식사

입력
2015.09.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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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최동훈 류승완 감독
2015년 여름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최동훈 류승완 감독

가을이지만 치열했던 여름 극장가 흥행대전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나란히 1,000만 클럽에 가입한 ‘암살’과 ‘베테랑’이 여전히 흥행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9일만 해도 ‘베테랑’이 5만7,268명을 모아 할리우드영화 ‘앤트맨’(9만3,289명)에 이어 일일 흥행순위 2위를 차지했습니다. ‘암살’은 흥행 동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1만6,512명으로 5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1,254만6,577명(‘암살’)과 1,206만1,711명(‘베테랑’)을 동원한 영화다운 뒷심입니다.

두 영화가 여름 대전을 벌인다고 했을 때 여러 가지 점이 호사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2000년대 영화판의 라이벌로 자리잡은 CJ E&M(‘베테랑’)과 쇼박스(‘암살’)가 류승완, 최동훈 두 스타 감독을 각각 내세워 최대 성수기 여름 시장에 맞붙게 된 점부터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두 감독과 제작사 대표의 닮은꼴 구성도 눈길을 모을 만했습니다. 류 감독은 아내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와 ‘베테랑’을 합작했고, 최 감독 역시 아내 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와 함께 ‘암살’을 선보였습니다. 두 부부의 흥행 싸움이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것이지요.

영화 ‘암살’이 7월22일 먼저 포문을 열었고 초반 흥행몰이에 성공했습니다. 잭팟을 예감했으나 2주 뒤 개봉(8월5일)하는 ‘베테랑’이 흥행가도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었습니다. CJ E&M의 ‘베테랑’이 관계사인 거대 멀티플렉스 체인 CJ CGV의 지원사격을 받으면 ‘암살’의 흥행 속도로 떨어지리라는 ‘음모론’도 흘러나왔습니다. 쇼박스 관계자들은 ‘베테랑’ 개봉 뒤 ‘암살’의 상영관이 줄어들자 노심초사하며 한 때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습니다. ‘베테랑’도 ‘암살’이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암살’의 흥행 태풍에 ‘베테랑’이 휩쓸릴까 봐 우려를 했다는 후문입니다. 18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된 ‘암살’의 볼거리가 제작비 59억원의 ‘베테랑’을 기세로 누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두 영화는 쌍끌이라는 행복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한 계절에 1,000만 한국영화 2편이 최초로 탄생하는 진귀한 기록도 합작했습니다. 막역한 사이인 최-류 감독, 안-강 대표가 파안대소하며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흥행 성적표가 나온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가을 초입 두 부부가 만나 흥행 뒷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이들은 8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의 노력을 격려하고 흥행 성공을 축하했습니다. 1차는 최-안 부부가, 2차는 류-강 부부가 번갈아 내면서 호기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9일 기자와 만난 류 감독의 전언에 따르면 최-안 부부가 조언을 주로 많이 한 자리였습니다. 2012년 ‘도둑들’로 1,000만 관객을 이미 경험해 본 부부로서 앞으로 맞이할 변화와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을 이야기해 줬다고 합니다.

1,000만 관객은 상업영화 감독에게는 이력의 정점을 의미합니다. 정상을 지키거나 하산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시점입니다. 투자배급사들이 대작들을 의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감독과 제작자가 과욕을 부릴 수 있는 때입니다. 허무감이 밀려올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암살’로 연달아 1,000만 관객의 영예를 맛본 최-안 부부가 아무래도 해줄 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 감독과 류 감독은 2000년대 충무로 르네상스를 빚어낸 일군의 감독들 중 막내급에 해당합니다. 박찬욱, 허진호, 김지운, 봉준호, 최동훈, 류승완 감독 등은 오래 전부터 서로 시나리오를 돌려보고 의견을 나누며 각자의 영화세계를 키워온 동지적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최 감독과 류 감독이 올해 여름 시장의 수확을 바탕으로 한국영화의 양적, 질적 성장에도 계속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두 사람의 훈훈한 저녁 자리는 한국영화의 든든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어 영화인들이 흐뭇해할 만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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