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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성장만능주의’와 복지국가의 디스토피아

입력
2015.09.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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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16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국민행복’을 모토로 당선된 박근혜정부의 세 번째 예산안이다. 총예산 387조원 중에서 사회보장분야 예산은 123조원이다. 절대액 기준으로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하면서 총예산의 30%를 넘어섰다. 증가율도 가팔라서 국방비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SOC 분야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 ‘증세 없는 복지’에 더해 국가부채 40% 시대가 시작된 것이 눈에 띈다. 성장 인프라의 침식이라는,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하이 톤’의 호들갑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자살률은 ‘국민불행’의 대표지표다. 친시장적 재정 전문가들을 긴장시키는 사회지출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자살률은 정상 범위를 넘어선 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2012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3.5명으로 OECD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2위 헝가리가 23.3명인 걸 보면 한국 자살률은 그냥 1위가 아니라 ‘압도적인 1위’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세를 이어가는데,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경제적 곤란 때문이라 진단한다.

이번 예산안을 두고서도 ‘건전재정론’과 ‘복지경계론’이 활개친다. 그들이 동원하는 현란한 수치들과 무시무시한 용어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OECD 최하위권인 한국의 사회보장이 국민행복의 장애요인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회보장분야의 뒤늦은 확충에 불과한데도 ‘주류들’이 견지하는 성장만능주의로의 회귀병증은 뿌리가 깊고 완치가 힘들다.

이러한 종류의 성장만능주의는 한국만의 특유한 현상이다. 복지마저 성장으로 해결하자는 미증유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안되던 대한민국. 이후 우리가 이룬 기적과도 같은 경제성장. 세계 유수 언론들이 지어준 그 이름, ‘한강의 기적’으로 아직도 칭송된다. 2015년의 한국을 이끄는 주류세대가 경험한 ‘한강의 기적’을 공유한 세대는 어디서고 찾기 힘들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훌쩍 넘은 지금, 성장의 낙수효과만으로도 복지가 감당되던 과거형의 국가전략은 더 이상 작동이 불가능하다. 2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의 발전전략은 100달러에서 2만달러로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국가전략 도출을 위한 기본적인 상식이다. 성장만능주의의 흘러간 옛 노래를 자꾸만 ‘리바이벌’하는 한국 주류의 독특한 정신세계는 ‘정신과 상담’이라도 필요해 보인다.

복지국가를 수정자본주의라 부르는 까닭은, 자본주의가 지속하려면 복지국가를 통한 수정이 필요해서다. 자본주의국가들이 선진화 과정에서 당면하는 세 가지 난제가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 양성불평등의 골칫거리들은 자본주의의 두 번째 도약을 위해 필수적으로 넘어서야 할 최우선 과제다.

첨단기업 중심의 선진형 성장전략은 제러미 리프킨이 걱정했던 ‘노동의 종말’을 잉태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진다. 복지가 웬 말이냐, 일해서 먹고 살아라. 이 말이 유효하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성장이 되긴 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사회,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달려가는 미래사회의 절벽이다. ‘슈퍼 리치’라는 말이 익숙해진 가운데, 노동시장마저 양분돼버렸다. 개천에서 용 난단 말은 전설로만 전해진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경쟁과정의 필요악 정도로 치부하는 와중에, 심해지는 갈등의 비용은 사후적 지출로 이어진다. ‘사람밖에 없다’는 한국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 덕에 이룬 기적적인 성장이었다. 때가 어느 땐데, 대학 나온 여성마저 홀대하는 가부장제는 계속된다. 배운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보이콧하면서 미래의 생산인구는 줄어만 간다.

이러한 문제들을 복지국가 없이 풀어낸 나라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세월호나 메르스 정도는 일도 아니다. 어설픈 성장만능주의에 미래를 맡긴다면 우리를 기다릴 미래는 ‘쪽박의 디스토피아’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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