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유해업소 해제율 60% 달해
위원회서 신청자 형평성 우선한 탓
지난달 열린 서울 소재 한 교육지원청의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에서는 A유흥주점의 영업허가 여부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A유흥주점이 지하1층에 입점할 건물은 유치원과 고등학교로부터 각각 65m, 190m 떨어져 있어 상대정화구역에 속하는 곳이다. 회의에선 “학생들이 성인 인쇄물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표결 끝에 12대 3으로 영업허가 결정이 나왔다.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서 금지된 시설 중 심의를 통해 금지해제 되는 비율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이 9일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시도별 학교정화구역 내 금지행위 및 시설해제 현황’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7월까지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에 금지해제를 신청한 1만3,050건 중 7,513건(57.6%)이 승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정화구역은 청소년의 학습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것으로 교문으로부터 50m,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인 지역을 각각 절대정화구역과 상대정화구역으로 구분한다. 절대정화구역에서는 호텔ㆍ단란주점ㆍ노래방 등 각종 숙박ㆍ유흥업소와 PC방 등이 모두 금지되고, 상대정화구역에서는 영업을 하려면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상대정화구역의 경우 57.6%라는 금지시설 허가율에서 볼 수 있듯이 위원회의 심의 잣대가 너무 무르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보호보다는 신청자들에 대한 ‘형평성’에 우선 순위를 두고 청소년 유해업소를 허용하는 결정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A유흥업소도 7월에 열렸던 위원회 심의에서는 “이 건물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이용해 통학하는 학생들이 이 건물을 지나칠 수 있다”는 우려로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청자가 불과 한달 만에 이 건물 2층에 있던 B유흥주점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재심을 요청하자 바로 허가가 떨어졌다. 같은 건물인데도 기준이 오락가락하는 셈이다.
한편 심의도 거치지 않고 학교정화구역 내에서 불법으로 운영 중인 금지시설도 전국적으로 374곳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여성가족부에서 지정한 신ㆍ변종업소가 223개나 됐다. 이상일 의원은 “어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교육시설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금지해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학교정화구역 내 금지시설에 대한 심의기준은 무엇보다 교육환경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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