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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년의 사랑과 로맨스 CA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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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년의 사랑과 로맨스 CARTIER

입력
2015.09.1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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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History

EDITOR 강지원

보석과 오브제 아트의 디자인 및 제조업체의 세계 최고로 널리 알려진 까르띠에는 168년의 역사를 지닌 전설적인 브랜드이다. 1847년, 파리의 한 보석상의 숙련공이었던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그의 주인이었던 아돌프 피카르로부터 파리 몽토르겨이가(Montorgueil街) 29번지의 보석 아뜰리에를 인수 받으면서 까르띠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에 앞서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그의 이니셜인 L과 C로 둘러싸인 하트와 마름모꼴을 그의 장인(匠人) 마크로 등록한다. 까르띠에 하우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루이 까르띠에가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인 ‘산토스 드 까르띠에ʼ를 선물한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
루이 까르띠에가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인 ‘산토스 드 까르띠에ʼ를 선물한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
최초의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최초의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초기의 파리 부티크
초기의 파리 부티크
초기의 런던 부티크
초기의 런던 부티크
초기의 뉴욕 부티크
초기의 뉴욕 부티크

# 영국황실의 보석상이 되다

1899년, 까르띠에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중심부였던 뤼 드 라빼(rue de la Paix) 13번지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까르띠에 정신과 어울리는 겉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알프레드는 그의 세 아들에게 까르띠 하우스의 해외 경영을 맡김으로써 국제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세 아들 루이 조제프(Louis Joseph)는 파리, 자크 떼오뒬(Jacques Theodule)은 런던, 피에르 까미유(Pierre Camille)는 뉴욕에 각각 터를 마련해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이 3대를 거치면서 까르띠에는 세계 최고의 보석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세대를 거듭할수록 보석상으로서의 명성을 높여 갔으며 예술 장르까지 보석의 영역을 넓힌 창조자로서 지대한 공을 세웠다. 후에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된 웨일즈(Wales)의 왕자로부터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Jeweler to kings, king of jewelers)’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에드워드 7세는 1902년 자신의 대관식을 위해 27개 티아라의 제작을 까르띠에에 맡겼다. 이 때문에 까르띠에는 보석상으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2년 후에도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를 ‘영국 황실의 보석상’으로 임명했다. 그 후 까르띠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시암(현 태국), 그리스, 세르비아, 벨기에, 루마니아, 이집트, 알바니아 왕실과 오를레앙 일가, 모나코 공국으로부터 비슷한 자격을 부여 받았다.

# 친구에게 최초를 선사하다

오늘날의 까르띠에를 만든 최고의 인물은 창업자의 손자인 루이 까르띠에다. 루이 까르띠에는 1904년 친구인 브라질 출신의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이 비행 중에도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 중 하나를 만들어 선사함으로써 시계 산업을 진일보시켰다. 일명 ‘산토스 드 까르띠에’는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포켓 시계가 아닌 손목에 차는 시계다. 시계도 타인의 눈에 보이는 액세서리가 될 수 있다는 계기를 마련해 준, 시계 산업의 현대적 발전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루이 까르띠에는 1924년, 친구인 장 꼭도(Jean Cocteau)를 위한 반지도 만들어 선물했다. 이후 반지는 까르띠에의 심볼이자 뮤즈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화이트 골드, 옐로 골드, 핑크 골드 등 3가지 골드가 환상적인 하모니를 자아내는 반지 트리니티는 세 개의 밴드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면서 우아함을 표현하는 까르띠에의 명작이다.

# 사랑의 팔찌, 러브 브레이슬릿

러브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러브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4개의 다이아몬드 1캐럿이 세팅된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4개의 다이아몬드 1캐럿이 세팅된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4개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화이트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4개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화이트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6개의 다이아몬드로 세팅된 러브 브레이슬릿
6개의 다이아몬드로 세팅된 러브 브레이슬릿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10개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과 드라이버
10개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과 드라이버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핑크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화이트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화이트 골드 러브 브레이슬릿

1969년, 까르띠에는 ‘LOVE(러브)’라고 이름 붙인 팔찌를 발표했다. 뉴욕 작업장에서 디자이너 알도 치풀로(Aldo Cipullo)가 1970년대의 상징이자 사랑에 대한 송시인 독특한 남녀공용 팔찌를 제작한 것이다. 팔찌를 끼운 다음에는 특수 제작된 스크류 드라이버를 이용해 영원히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중세의 전사가 아내에게 매단 정조대에서 힌트를 얻어 작은 전용 드라이버로 나사를 죈다고 하는 독특한 콘셉트 때문에 큰 인기를 얻었다. 까르띠에는 ‘평화와 사랑 운동’의 절정기였던 당시 세계의 연인들에게 이 팔찌를 선사했다. 이 사랑의 팔찌(LOVE Bracelet)와 그 인기를 얻어 탄생한 반지(LOVE Ring)는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게 됐다. 평생 동안 연인의 팔목을 휘감는 팔찌.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순수한 욕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러브 브레이슬릿은 당시 매우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타원형을 띠는 이 팔찌는 사람의 팔목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수많은 코드 중 가장 인지도가 높고 반향이 큰 나사를 필요로 한다. 타원 형태와 나사는 산토스 시계 다이얼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회전 시키면 영원히 잠겨버리고 마는 브레이슬릿으로부터 영감을 이끌어 낸 러브 컬렉션은 까르띠에에 있어서 하나의 전설적인 주얼리로 통한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이 사랑의 고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차드 버튼, 소피아 로렌과 카를로 폰티와 같은 유명한 연인들의 사랑을 이어줬다.

# 장인정신이 만든 결실

오랫동안 보석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예술적 영감으로 만들어 낸 까르띠에 하우스의 장인정신은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품들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하나의 보석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까르띠에 하우스는 수많은 단계를 거친다. 까르띠에의 예술적 영감을 통해 생성되는 모티브의 콘셉트는 최초에는 단어로만 존재했다. 무수한 스케치와 회의, 수정의 반복을 통해 레이아웃이 만들어지고 본격적인 제작 단계에 들어간다. 그리고 여러 색의 왁스로 테스트용의 기초적인 형태를 제작해 아이디어를 더욱 구체화한다. 석회 주물, 연마, 광택, 양각세공, 비늘 세공, 브러싱 공정, 보석의 세팅 등의 과정을 거치며 각 과정마다 또 다시 수많은 검사와 수정이 이뤄진다. 까르띠에의 모든 작업은 자연광을 이용한 스튜디오에서 이뤄진다.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피리피리 무론고이, 무제, 날짜미상 Ⓒ앙드레 모린
피리피리 무론고이, 무제, 날짜미상 Ⓒ앙드레 모린
미카, 노스탈지아, 2014 ⒸJ-P 미카
미카, 노스탈지아, 2014 ⒸJ-P 미카
모드문트, 쿠사이디아, 1980 Ⓒ미카엘 드 플란
모드문트, 쿠사이디아, 1980 Ⓒ미카엘 드 플란

까르띠에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1984년에 설립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프랑스 국내외에서의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전시회를 통해 독창적이고 유일한 후원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시대의 다양성과 현대미술의 절충주의가 조화를 이루면서 작가들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 재단은 현대미술을 널리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으며 대중에게 프랑스 작가를 비롯한 세계적인 작가들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재단은 세계 무대에서 호평 받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파리의 장 누벨(Jean Nouvel)에 의해 유리와 스틸로 만들어진 빌딩에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재단은 오는 7월 9일부터 11월 15일까지 콩고의 예술을 감상해 볼 수 있는 전시회를 마련한다. 콩고에서 근대 회화가 탄생한 1920년대를 출발점으로 삼은 이번 전시회는 거의 100년에 걸친 콩고의 예술적 생산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특히 중심이 되는 회화와 더불어 음악, 조각, 사진 작품도 함께 선보임으로써 그들의 다양하고 활력 넘치는 예술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미스터리 클락

1923년 제작된 포르티끄 미스터리 클락
1923년 제작된 포르티끄 미스터리 클락

시계 디자인과 제조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루이 까르띠에는 그만의 보석 디자인과 세공을 응용해서 벽시계, 탁상시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923년 최고의 예술미와 기술이 조화를 이룬 포르티끄 미스터리 클락(Portique mystery clock)을 제작해 특허권을 따내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시계 전문가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기술적인 완성을 더해오던 까르띠에는 뛰어난 시계 전문가인 모리스 코우(Maurice Couet)와 함께 미스터리 클락의 성능을 높였다. 1907년 에드몬드 예거와의 공동 작업으로 특허권을 딴 손목시계 버클은 시계 제조 역사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까르띠에의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는 대부분 왕실, 귀족, 대부호를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최고의 디자이너, 시계 기술자, 감정사, 세공 전문가, 광택 전문가들의 손과 최상의 소재가 사용됐으며, 까르띠에의 이러한 엄격한 소재 선택과 완벽한 세공, 제조 기술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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