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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게 이기는 것"

입력
2015.09.0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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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지망생 때 방송사서 문전박대

이 악물고 10년 만에 첫 주연

연기에 쏟은 열정 알아줄 거라 믿음

11월 리암니슨과 '인천상륙작전' 촬영

10여년의 단역 생활을 거친 배우 이범수는 가장 어려웠던 단역으로 시체 연기를 꼽았다. “침도 삼킬 수 없어서”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10여년의 단역 생활을 거친 배우 이범수는 가장 어려웠던 단역으로 시체 연기를 꼽았다. “침도 삼킬 수 없어서”다.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년)

“니가 키가 크냐, 서구적인 마스크이기를 하냐?” 1990년대 방송사 문턱을 처음 밟은 배우지망생은 한 SBS PD의 쓴소리에 “울다시피 하며” 건물을 나왔다. 배우 이범수(45)는 이 때를 “살면서 가장 민망했던 순간”으로 떠올렸다. 이를 악문 이범수는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로 SBS 드라마에서 첫 주연을 꿰찼다. 촬영을 하던 이범수는 방송사에서 10여년 만에 그 PD를 다시 만났고, 이번엔 PD가 먼저 반갑게 이범수를 맞았다.

JTBC 드라마 ‘라스트’의 종영을 앞두고 8일 서울 강남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범수는 옛 얘기를 꺼내자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초반 10년은 ‘숨은 그림 찾기’나 다름 없다. 대학 선배인 강제규 감독에게 ‘쉬리’(1998)에 출연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범수는 대기만성형이었다. 경찰2(‘개 같은 날의 오후’), 호프집 직원2(‘지상만가’) 등 단역을 하면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 전공을 살리자”는 소신을 갖고 한눈 팔지 않았다. 이범수는 “내가 연기를 배우며 쏟은 열정과 학창시절이 소중했고 언젠가 알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며 “많은 동료들이 생활이 녹록하지 않아 포기했지만, 난 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범수는 악착 같다.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 ‘태양은 없다’(1998)에 출연한 것도 투지 없인 불가능했다. ‘비트’로 유명한 김성수 감독이 신작을 준비한다는 말에 캐스팅이 끝났음에도 사무실로 찾아갔다. “다음에 할 작품을 위해서라도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졸랐다. 이 때 이범수를 알아 본 감독은 일주일 전 극중 사채업자로 뽑았던 배우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범수를 캐스팅했다. 이범수는 “감독이 날 보고 진짜 건달인 줄 알았다더라”며 웃었다. 이범수는 “혜성처럼 등장하고 싶었지만, 많은 이들이 ‘30만원 배우’로 출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달았다”고 지난 날을 추억한다. 30만원은 그가 데뷔작에서 4개월 동안 촬영하고 받은 출연료다.

이런 옛 모습을 떠올리며 이범수는 ‘라스트’를 찍었다. 고아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거리에서 자라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역을 인상 깊게 연기한 그는 “캐릭터가 역동적이라 흥미로웠고, 모처럼 긴장을 준 작품”이라고 의미를 뒀다. ‘라스트’를 끝낸 이범수는 11월부터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과 함께 영화 ‘인천상륙작전’ 촬영에 들어간다.

이범수는 하정우와 현빈의 연기 스승으로 유명하다. 대학교 때부터 ‘특급 연기 과외 선생’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현재 신한대 공연예술학과 학과장으로 강단에 선다. 학생들에게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린다. “꿈 앞에선 야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제자를 엄하게 대한단다. SBS 배우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했던 그는 후배 양성에 특히 관심이 높다. 이범수는 올초 테스피스 엔터테인먼트를 차려 김신 등 후배 연기자 데뷔를 도왔다. 이범수는 “그게 내 재능이고, 25년 동안 버틴 배우로서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초·중·고 미술부 출신인 이범수는 2010년 통역사인 아내와 결혼할 때 청첩장에 두 사람의 얼굴을 직접 그려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집에선 어린 딸과 허물 없이 친구처럼 놀다 보니 가끔 딸에게 “너”란 소리도 듣는 딸 바보 아빠다. 이범수의 아내는 남편을 ‘피터팬’이라 부른다. 이범수는“씩씩한 학생회장 같다고 붙여준 별명”이라며 “대본을 받고 캐릭터 상상을 하면 신이 나는데, 확실히 아직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며 천진하게 웃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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