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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 굴의 비극 담은 애잔한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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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 굴의 비극 담은 애잔한 데칼코마니

입력
2015.09.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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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봄이고 봄이면 섬진강이다. 매화마을은 당연히 섬진강 가에 있어야 한다. 그건 지리적 상식이기보다 관념적 사실로 굳어졌다. 평창읍내에서 약 8km하류 평창강이 다시 한번 크게 휘어지는 곳에도 매화마을이 있다. 매화나무는 없다. 가을이어서가 아니다. 원래 매화꽃과는 상관없는 지명이다. 행정지명은 평창읍 응암리(鷹岩里)다. 우리말로 옮기면 ‘매바위마을’쯤 되겠다. ‘매화’를 조금 더 풀어보면 매 때문에 화를 당했다는 뜻이다.

절개산 바위절벽이 잔잔한 평창강 수면에 비쳐 완벽한 데칼코마니 작품을 그린다. 평창=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절개산 바위절벽이 잔잔한 평창강 수면에 비쳐 완벽한 데칼코마니 작품을 그린다. 평창=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유래는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평창군수 권두문과 마을주민들은 절개산 자락 동굴에 피신해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관군과 민간인이 피신한 2개의 동굴은 매를 날려 교신했는데 이 때문에 왜군에 발각돼 마을주민이 몰살당하는 참극을 맞는다. 군수는 포로로 잡히고 그의 처는 절개산 바위에서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슬픈 역사가 전해 온다.

응암굴로 부르는 피란 굴은 강 맞은편 절개산 자락에 입구만 간신히 보인다. 15년 전 마지막으로 굴속에 들어가 봤다는 마을주민 지영호(63)씨는 수 백 명은 너끈히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안이 넓다고 전했다. 불을 때거나 짚을 깐 흔적도 볼 수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굴속이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평창강에 비친 절개산 모습
평창강에 비친 절개산 모습
매바위 굴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무심히 강위를 나는 백로 한 마리.
매바위 굴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무심히 강위를 나는 백로 한 마리.
매화마을로 통하는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다.
매화마을로 통하는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다.

응암굴 아래로 흐르는 평창강물은 참혹한 역사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잔잔한 수면에 절개산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지금은 제법 노란 물이 든 바위취와 돌단풍이 수면에 밀착된 모습이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 조금 과장하면 수직 절벽에 대형 거울을 설치해 놓은 듯, 우뚝 솟은 바위산이 그대로 비쳐 한없이 평화롭다. 일교차가 큰 요즘은 아침마다 잔잔하게 물안개가 피어올라 선경을 연출한다. 평창강팬션을 운영하는 조현경씨도 이 모습에 반해 4년 전 매화마을로 귀촌했다. 사시사철 새로운 풍경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설경에 가장 끌린단다. 바위 끝에 걸린 소나무가 하얗게 눈을 인 고고한 자태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고백이다.

매화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소나무 숲길이다. 마을로 통하는 길은 평창에서 영월로 가는 31번 국도에서 연결된다. 1km 남짓하지만 이정표가 아니라면 마을이 있다고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 고즈넉하다. 얕은 능선을 조금만 오르면 그때부터는 깊은 산속에 들어선 것처럼 양편으로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매화마을엔 사실 내세울만한 즐길 거리는 없다. 그런데도 한 번 발길을 한 이들이 꾸준히 찾는 것은 자극적이지 않은 평화로운 풍경 때문이다. 절개산과 평창강에 둘러싸인 20여 가구 작은 마을이 빚어내는 완벽한 평화, 그것이 매화마을의 매력이다. 즐길 거리라고 해봐야 강둑과 소나무 숲길을 연결한 약 4km 산책길이 전부다. 이마저도 굳이 다 걸을 필요 없다. 강변 산책로에 놓아둔 벤치에 않아 책 한 줄 읽다가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절개산과 평창강엔 햇살이 비치고, 강둑엔 그늘이 드리운 늦은 오후면 더욱 좋겠다.

▦평창의 가을, 2개의 꽃밭

‘메밀꽃 필 무렵’이면 평창에서 메밀은 곡식이기 보다는 축제를 위한 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봉평면에서 열리는 ‘효석 문화제’가 벌써 17회째다. 올해 축제는 이번 주말(13일) 막을 내리지만 메밀꽃은 서리가 내리는 10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순차적으로 씨를 뿌리기 때문이다. 메밀 밭은 봉평면 이효석 문학관 주변에 집중돼 있다.

봉평장과 대화장을 오가는 소설 속 운치를 느끼기에는 문학관에서 1.5km 떨어진 ‘이효석 문학의 숲’ 앞이 한결 낫다. 경사진 산밭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메밀 꽃밭이 소설의 주요 장면을 재현한 숲까지 이어져 있다. 봉평면사무소 소재지에 메밀 요리 전문식당이 밀집해 있다. 미가연 식당(033-335-8805)은 ‘쓴모밀’을 이용한 육회 묵무침 비빔밥 등 정갈한 메밀 싹 요리로 유명하다.

봉평 메밀밭은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순차적으로 꽃은 피운다.
봉평 메밀밭은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순차적으로 꽃은 피운다.
평창읍 평창강 둔치에 조성된 백일홍 꽃밭.
평창읍 평창강 둔치에 조성된 백일홍 꽃밭.

평창군은 올해 관광객을 위해 또 다른 꽃밭을 만들었다. 바로 평창읍 평창강변에 조성한 1천만 송이 백일홍 꽃밭이다. 붉은색과 노란색 계열의 다양한 꽃송이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하게 강변을 장식하고 있다. 백일홍 꽃밭 보러 일부러 가기는 무리지만 평강읍을 지나는 길이면 꼭 들러볼 만하다. 풍성한 백일홍과 어울리는 산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그만이다.

이효석의 소설에서 출발한 메밀 꽃이 이야기 거리가 풍성한데 비해 백일홍 꽃밭은 보기 좋다는 것 외에는 뜬금없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입힐 것인지는 여행객의 몫이고 평창군의 숙제다.

평창=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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