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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정말 호랑이였을까?

입력
2015.09.0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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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 쪽 본적이 지리산 골짜기다. 옛적부터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으로 유명하지만, 집안 어른 중 누구도 호랑이를 마주친 적은 없었다고 들었다. 대신, 아버지가 어릴 때 증조할아버지께서 호랑이가 나타나면 눈을 마주보고는 ‘너한테 해꼬지 안 할 거니까 너도 나 잡아먹지 마라’고 차근차근 속삭이라고 말씀하셨단다. 그러면 호랑이가 슬금슬금 사라진다나. 무슨 설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식의 훈계조보다는 정겹고 그윽한 얘기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이 얘길 들었었다. 호랑일 마주칠 일도, 그에 준하는 공포나 살의를 겪어본 적도 없지만, 가끔 떠올리면 당장 짊어지고 있던 등짐 같은 게 사라지는 기분이 되곤 한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고 있는 일이 꼬여 머리가 무거워질 때도 적절히 환기된다. 요컨대, 그 편에선 아무 내색도 시늉도 안 하는데 지레 힘에 부쳐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 호랑이는 그저 어떤 부담감이나 두려움을 먼저 내세운 선험적 공포의 표상일 수 있다. 정작 마주친 건 호랑이가 아니라 그저 비슷한 상황을 맞아 이편과 똑같이 좌불안석에 놓여버린 또 한 명의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너를 호랑이라 여기고 너도 나를 호랑이라 여겼는데, 정작 호랑이는 어디에도 없는 상황. 가짜로 으르렁대는 호랑이 소리가 요즘 좀 많이 들리는 것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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