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장소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은 “옷차림이 참 특이하시네요”라고 돌려 지적하곤 한다. 그럴 때 “음악가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모두가 대번에 수긍한다. 이렇듯 한국에서 음악가로 산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격식에 맞지 않는 글을 써내더라도 “음악가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직업을 말하기만 하면 이해를 받으니 음악가는 거의 벼슬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풍류를 아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이 음악가라는 직업을 벼슬로 만든 것이리라.
그러나 음악가가 아무리 굉장하다고 해도 음악을 나누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모름지기 음악은 나누어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나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나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 두 번째는 상대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보유한 미국은 첫 번째 방법을 즐겨 한다. 이라크 전쟁 때도 그랬다. 당시 미군은 관타나모 기지에 붙들려온 이라크 포로들에게 메탈리카와 디어사이드 등의 헤비메탈 음악을 매일같이 들려주었다. 미국이 가진 아름다운 음악을 나누었더니 ‘악의 축’ 병사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즐거움에 몸부림쳤다. 그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의 세력은 더욱 커졌고 전쟁과 테러가 더욱 일어나게 됐다.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했을 때도 그랬다. 침공이라는 단어는 감히 미국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 같으니까 진출이라고 해두겠다. 파나마에 진출했을 때도 확성기를 동원해 헤비메탈 음악을 매일같이 들려주었다. 그 이후 파나마는 독재자와 독재자의 부인과 독재자의 아들이 번갈아 가며 해먹는 나라가 됐다.
형님을 보면 아우를 안다는 말마따나, 세계 제이의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보유한 우리도 미국처럼 첫 번째 방법을 즐겨 한다. 우리는 북녘 땅의 동포들을 향해 빅뱅과 소녀시대 등의 케이팝 음악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가진 아름다운 음악을 나누었더니 북녘 땅의 병사들은 포탄으로 응수하며 즐거움에 몸부림쳤다.
그 이후 우리 군의 단호함으로 북한으로부터 유감이라고 쓰고 사과라고 읽는 것을 이끌어냈지만 그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풀렸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은 당장 다음 달인 노동당 창건일에 장거리 미사일을 쏜다고 하지 않는가. 아마 음악을 나누는 첫 번째 방법으로는 원한과 갈등만 깊어지는 모양이다. 아무리 좋은 곡이라 해도 상대에게는 고문이 된다.
음악은 본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커다란 확성기를 놓는 것 보다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마음을 흔듦으로써 역사를 바꾼 음악을 알고 있다. 기원전 202년, 해하를 포위한 한나라 병사들이 부른 노래가 그것이다. 그들이 부른 것은 적국인 초나라의 노래였다. 초나라 병사들은 자국의 노랫가락이 들리자 앞다투어 항우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렇게 한방에 난세가 끝났다. 이것이 음악을 나누는 두 번째 방법이다.
나는 한나라 병사들이 어떻게 초나라 노래를 알고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 음악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잡혀간 사람은 2010년대에도 있다. 이미 유튜브에도 북한 음악이 올라오는 세상이다. 서양 네티즌들은 그것을 우스갯거리로 소비하고 있지만 우리는 북한 음악을 알면 안 된다.
며칠 전 노래방 기기에서 북한 노래가 발견되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탈북자와 조선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의 노래방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간첩이라서 북한 노래를 불렀는지 아니면 단지 고국의 노래가 그리웠던 건지는 아직 모른다. 특별히 위험한 일이 없었다면, 금지와 처벌보다는 이 기회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북한 음악을 일부 허용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북한 노래를 부르면 북한 병사들이 김정은을 버리고 달아날지 누가 알겠는가. 이런 순진한 얘기를 신문에 싣는 까닭은 “음악가라서 그렇습니다”.
손이상 문화운동가ㆍ밴드 요단강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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