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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속 가능할까

입력
2015.09.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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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 고위 관료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지난 만큼 후반기 정책의 방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 지 물었다. “당연히 경제 살리기 아니겠느냐”는 대답에 창조경제에 집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창조경제 말고 다른 것은 없는 지 재차 물었다. “창조경제는 이 정부가 대통령 임기 동안 꾸준히 추진하는 정책 아젠다”라며 일회성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 왔다.

그 표상이 대기업이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만든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일 것이다. 그런데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들어보면 과연 창조경제가 제대로 꽃피울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명 A기업은 어느 날 지방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참여하라는 정부 공문을 받았다. A기업은 지역 연고나 관련 지역 사업을 하는 게 아니어서 참여 이유를 물었다.

정부 답변을 들어보니 황당하게도 A기업이 그 지역에 창고를 갖고 있었다.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는데, 대통령과 함께 개막식에 참석하라는 얘기를 듣고 당황했다”며 “회사 이름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결국 수락했다”는 업체 설명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석에서 만난 모 기관장 사례도 A기업 못지 않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이 기관장은 센터 발족을 두어 주일 앞두고 정부로부터 급한 공문을 받았다. 역시 해당 지역 창조경제센터에 참여하라는 공문이었다. 문제는 이 기관이 하는 일이 해당 지역 센터에서 표방한 내용과 맞지 않았다. 그래도 무조건 참가하라는 정부 지시에 이 기관장은 어쩔 수 없이 동참 서명을 해서 보냈다. 정작 관련 분야에서 유명한 지방 대학은 해당 센터 참여 명단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준비 부족과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마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경부고속도로,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널리 홍보됐던 88 서울올림픽,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이 정권의 치적물로 여기면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몇 가지 부정적 사례 때문에 대기업이 작은 기업들과 지역 경제를 돕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긍정적 효과가 가려지거나 폄하되면 안 된다. 기존 산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신산업과 혁신 기업들이 늘어나고 일자리까지 창출한다는 창조경제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대기업을 짝짓기한 창조경제혁신센터보다 수 많은 창업기업(스타트업)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도 우리는 지나친 규제나 제도적 틀에 가로막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창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던 온라인 게임산업은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중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고 첨단 인터넷 금융서비스는 아예 사업화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저작권 보호처럼 엄격한 규제가 필요한 분야는 법의 감시와 적용이 소홀해 콘텐츠 산업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물론 제도 정비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효과를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렇다 보니 몇 개 기업 창업, 얼마의 부가가치 창출 등 성과를 숫자로 보여줄 수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집중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가 간다. 매번 국정감사 때만 되면 창조경제의 성과가 늘 도마에 오른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까지 미래창조과학부가 책정한 창조경제 예산이 총 21조5,615억원이다. 이런 예산을 쓰고도 눈에 보이는 게 없다면 질타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하도 말이 많다 보니 미래부는 올해부터 창조경제 예산을 따로 발표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정권의 성과를 상징하는 치적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창조경제는 과거 정권들의 실패한 정책 표어처럼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최연진 산업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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