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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北 동생들 만나야지"… 기억은 흐려져도 그리움은 오롯이

입력
2015.09.0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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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中서 만났던 남동생은 사망

생존한 동색 2명 만나기 위해

이산상봉 지원했지만 번번이 고배

20개월 만에 이산상봉 재개 기대감

신청 마감일 한적 본사 북새통

실향민 이정자씨가 8일 서울 하계동 자택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의 사진을 들고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실향민 이정자씨가 8일 서울 하계동 자택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의 사진을 들고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동생들이 그 동안 잘 살았는지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 조카들이 몇이나 있는지도….”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에 합의한 8일 서울 하계동 자택에서 만난 실향민 이정자(87ㆍ여)씨는 물끄러미 남동생의 사진을 바라봤다. 1980년대 말 미국으로 이민 가 영주권을 얻은 친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속 동생은 웃고 있지만 몇 해 전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짓무른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낸 이씨는 사진을 내려 놓고 초점 없는 눈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 딸 신경희(59)씨는 “어머니가 치매 증상이 있어 어떤 때는 삼촌이 돌아가신 걸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1928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태어난 이씨는 스무 살 때인 48년 결혼해 남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후 여태껏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고향에 남겨진 6남매 중 이복언니와 첫째 동생은 6ㆍ25전쟁 와중에 월남해 부산에서 해후했지만 어머니와 남동생 둘, 그리고 여동생은 볼 길이 없었다.

꿈에도 못 잊던 어머니와 동생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건 북을 떠난 지 40년도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미국으로 이민 간 동향 친구가 고향을 찾았다가 어머니와 동생들의 소식을 알려줬다.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지인과 브로커를 통해 가까스로 동생과 연락이 닿은 이씨는 90년 초겨울 두만강 북쪽 중국 땅에서 동생 원동호씨를 만날 수 있었다. 동생은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고향집이 있던 곳에는 공산당 관사가 들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산다고 전했다. 경희씨는 “동생을 만나고 온 어머니가 ‘갖고 있던 돈과 물품을 다 주고 입고 있던 내복까지 벗어줬다’고 전하며 가슴을 쳤다”고 말했다. 딸의 설명을 말 없이 듣고 있던 이씨는 당시가 떠올랐는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짧은 만남이 한으로 남았는지 이씨는 다른 동생들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지원했지만 매번 고배를 마셨다. 둘째 딸 경혜(58)씨의 시어머니가 2010년 이산가족 상봉 최고령자(95세)로 딸을 만난다는 얘기를 듣고선 “나도 가면 안 되느냐”며 조르기도 했다.

간간이 어린 시절을 떠올릴 뿐 이씨의 기억은 온전치 못했다. 삼풍백화점에서 한복 가게를 운영하다 95년 붕괴 사고 당시 간신히 화를 면했지만 그 때 충격으로 치매가 생긴 탓이다. 그러나 동생들을 그리워하고 고향집을 가보고 싶은 마음만은 한결같다. 이씨는 “북에 두고 온 동생들이 고생하고 있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몇 번이나 읊조렸다. 경희씨는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화상통화나 편지 등을 통해서 안부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정부가 꼭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씨처럼 1년 8개월 만에 재개되는 상봉 소식에 많은 이산가족들이 부푼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 남산동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한적) 본사는 상봉 추첨신청 마감이 이날 오후 6시로 정해졌기 때문인지 신규 접수를 하려는 사람들과 기존 신청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접수를 도운 한적 서초지구협의회장 김영진(59)씨는 “남북이 협상에 들어간 7일부터 접수 대기자들이 줄을 이어 복도는 물론 화상 상봉실까지 꽉 들어찰 정도였다”며 “전화 문의도 2배가량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이산가족 상봉 신규 접수가 130건이나 됐다. 한적 본사에서 만난 이형일(61)씨는 브라질에 있는 어머니 김가선(90)씨를 대신해 처음 상봉 신청을 했다. 김씨는 의사인 남편을 따라 남북을 오가며 일했지만 전쟁 통에 북에 동생 4명을 남겨둔 채 남쪽에 남았다. 이후 1964년 브라질로 이민을 갔고 한국 소식을 잘 들을 수 없어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평생 살아왔다. 아들 이씨는 “북에서 누가 왔다고 하면 막연히 전에 살던 집주소를 대며 동생들의 근황을 물으시곤 했다”며 “한국을 잠시 찾았다가 뉴스를 통해 상봉 재개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신청서를 냈다”고 말했다.

누나 3명과 사촌동생이 북에 있는 전주을(84)씨는 이날 반듯한 정장을 입고 다시 접수처를 찾았다. 그는 행여 추첨에 도움이 될까 싶어 탄원서에 비뚤배뚤한 글씨로 어머니와 생이별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었다. 전씨는 “며칠 전 한적으로부터 생사확인 여부 전화를 받고서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상봉 인원이 턱없이 적긴 하지만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내게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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