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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홍차의 향기 뒤에… 인도 차밭 노동현장의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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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홍차의 향기 뒤에… 인도 차밭 노동현장의 악취

입력
2015.09.0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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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안 들어오는 허름한 주택… 지붕에선 빗물 새고 근원불명 식수

일당, 주거비까지 포함해 1.5달러… 인도 최저 임금보다 낮아

당국은 아동노동 착취 등 소극적 대응… 영국 차 회사들은 알고도 모른 체

영국인의 차(茶) 사랑은 유별나다. 커피에 밀려 나날이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지만 오후 다과를 함께하는 티타임은 꾸준히 사교와 비즈니스의 주요한 일과로 남아있어 연평균 1인 당 1.5㎏ 내외의 홍차가 소비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품격 있는 취향의 대명사인 영국인의 차 사랑의 이면에는 외면할 수 없는 쓸쓸한 음지가 도사리고 있다. 영국인이 마시는 한 잔의 홍차를 만들기 위해 인도의 차 농장 노동자들이 희생하는 일상은 티타임의 고상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다. 국제노동자권리포럼(ILRF)은 영국기업들의 인도 내 차 생산지 노동자 복지에 대한 무신경은 과거 식민지 시절부터 뿌리가 내려 개선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할 정도다.

영국 방송 BBC는 8일 영국의 주요 차 브랜드들이 인도 현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어떻게 방치해왔는지 고발했다.

세계적 차 생산지인 인도 아삼(Assam)지역을 찾아간 BBC와 라디오 채널4 공동 취재진은 차마 인간이 사는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차 농장 노동자들의 생활 공간을 발견했다. 이 농장은 영국인들이 비싼 값으로 구입하는 영국 유명 브랜드 차를 납품하는 생산지이다.

취재진에 따르면 이들이 사는 주택 중에는 화장실이 없어 차 덤불에 들어가 용변을 봐야 할 정도로 위생이 취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 수명이 수개월에 불과한 열악한 보호장비를 쓴 채 차 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화학약품에 쉽게 노출되는 위험에 처해있다.

BBC 취재진이 방문한 찻잎 생산 노동자 집단 주거지에서는 멀쩡한 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제때 수리를 하지 않아 지붕에선 빗물이 새고, 그나마 있는 화장실들도 오물로 막혔거나 제구실을 못하는 게 대다수였다. 배수구는 화장실에서 넘쳐난 오수로 가득했고 노동자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물을 받아먹고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은 “업체에 수년 동안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차 생산 업체인 맥리오드 러셀의 아삼지역 노동자 집단주거지 매니저는 “관리와 보수공사를 기다리고 있는 주택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라며 부실한 환경을 인정했다. 그는 많은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아래 있으며 740개 주택 주민들이 화장실 464개를 공유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BBC에 따르면 아삼 지역 차밭 노동자들의 급여는 하루 115루피(약 1.5달러)가량으로 인도 최저임금(177 루피)보다 낮다. 더구나 이 급여에는 이들의 주거비용까지 포함된다. 이런 이유로 인도 전체 영양실조 환자 10명 중 9명이 차 밭 노동자일 정도로 건강상태가 부실하다. 더욱 심각한 현실은 아동 노동력 착취이다. 취재진이 만난 열네 살 소녀는 “열살 때부터 매일 같이 하루 종일 찻잎을 따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열다섯 살 이하 어린이의 풀타임(Full time) 노동을 인권탄압으로 규정하고 있다.

BBC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실태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은 인도 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이라고 지적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누구라도 이들 노동자 주거지역을 방문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경찰과 함께 노동자들을 면회하는 일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BBC는 “맥리오드 러셀사의 거주지 취재 허가를 받기가 굉장히 까다로웠으며, 심지어 취재진이 공장시설에 한동안 구금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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