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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10주년… 흑인 5명 중 3명 "상처 아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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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10주년… 흑인 5명 중 3명 "상처 아물지 않았다"

입력
2015.09.0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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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 구호자금 170조원… 허리케인 피해지역 80% 복구

주민 48만 → 20만 → 38만명으로… 관광객도 늘며 공항·상점 활기 찾아

흑인 인구 70%서 60%로 줄어… 생활고 등에 시달리다 고향 등져

백인 5명 중 4명은 "완전 복구됐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10주년을 맞은 지난달 29일 최대 피해지역이었던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로워 나인스 워드 지역에서 시민들이 카트리나 피해를 극복해낸 것을 축하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뉴올리언스=AFP연합뉴스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10주년을 맞은 지난달 29일 최대 피해지역이었던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로워 나인스 워드 지역에서 시민들이 카트리나 피해를 극복해낸 것을 축하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뉴올리언스=AFP연합뉴스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지난달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10주년 추모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거리 행진에 나와 지난 10년 동안 뉴올리언스 복구를 위한 서로의 헌신에 박수를 보냈고 동시에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상처를 보듬었다.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카트리나는 2005년 8월29일 뉴올리언스를 할퀴고 지나가면서 약 2,000명의 사망자와 백만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시민들은 이날 로워 나인스 워드 지역에서 시내에 있는 대형 종합운동장인 슈퍼돔까지 행진했다. 로워 나인스 워드 지역은 태풍 카트리나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밀려든 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슈퍼돔은 도시를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이재민 약 2만5,000명이 정부의 구조를 기다리며 대피한 곳이다. 시민들은 재앙의 흔적들을 차례차례 지나가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했다. 미치 랜드류 뉴올리언스 시장은 행사 시작에 앞서 가진 추모사에서 “카트리나로 사망한 이들 중 여전히 유가족이 확인되지 않는 시신 83구가 있다”면서 “비록 그들의 이름을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이날 추모 행사를 여는 한편 옆에서는 술과 음식을 즐기는 뉴올리언스의 명물 마디그라 축제를 열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고, 밴드들은 거리 곳곳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뉴올리언스 복구 10년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로워 나인스 워드 지역에 살고 있는 나타샤 그린(36)은 “오늘은 괴로우면서도 기쁠 수밖에 없는 날”이라며 “이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많은 희생자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카트리나 재난을 훌륭하게 극복해 낸 이들”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날 뉴올리언스의 지난 10년을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내며 복구 과정 중에 생겨난 명암을 조명했다. 뉴올리언스의 복구 사업에 막대한 연방 예산이 투입돼 도시의 외형과 기반시설은 대부분 복구된 것을 평가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백인과 흑인 지역에 대한 지원 차별과 부동산 값 상승에 따른 빈민층의 퇴출 등 구조적 불평등은 카트리나 이전보다 훨씬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2005년 8월 31일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도로에서 한 남성이 자전거를 끌고 다리 위까지 찬 물을 헤치며 슈퍼돔 앞을 지나고 있다. 뉴올리언스=AP 연합뉴스
2005년 8월 31일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도로에서 한 남성이 자전거를 끌고 다리 위까지 찬 물을 헤치며 슈퍼돔 앞을 지나고 있다. 뉴올리언스=AP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새 단장한 메르세데스-벤츠 슈퍼돔 앞에서 휴스턴 텍슨스와 뉴올리언스 세인츠 사이의 미식축구 경기를 기다리는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뉴올리언스=AFP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새 단장한 메르세데스-벤츠 슈퍼돔 앞에서 휴스턴 텍슨스와 뉴올리언스 세인츠 사이의 미식축구 경기를 기다리는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뉴올리언스=AFP 연합뉴스

카트리나 발생 후 10년, 뉴올리언스 복구 성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 스튜어트(10)는 지난달 카트리나 발생 10주년 행사를 맞아 뉴올리언스 시내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스튜어트는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에 상륙했던 2005년 8월 29일 이 병원의 신생아 응급실에서 생사를 다투고 있는 중이었다. 3개월 일찍 태어난 미숙아였던 스튜어트는 산소호흡기와 인공 심장박동기 등 의료기기의 도움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카트리나는 스튜어트의 목숨을 앗아 가기 위해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다. 제방이 터지며 불어난 물이 병원으로 밀려들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대피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정전이 되면서 모든 의료장비가 멈췄다. 당시 스튜어트의 담당 의사였던 후안 걸쉬닉은 “스튜어트를 이송하려고 구조본부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헬리콥터가 다음날 아침 10시에야 도착할 수 있다는 무전을 받았다”며 “절망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걸쉬닉은 병원에 혼자 남길 선택했다. 그는 헬리콥터가 도착할 때까지 수시간 동안 수동 펌프를 손으로 눌러 스튜어트의 폐에 직접 공기를 불어넣었다. 스튜어트는 그 후 처음으로 지난달 걸쉬닉을 만나 고마움의 말을 전했다고 abc방송이 전했다.

현지 언론들은 카트리나 10주년을 맞아 재앙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영웅담과 뉴올리언스 복원의 성과 등을 쏟아냈다. 연방 정부는 카트리나 발생 직후 뉴올리언스를 위한 구호자금으로 약 1,420억달러(약 170조원)를 편성했다. 이재민을 위한 의료비와 식량, 거주지원 자금 등을 위한 몫이었다. 이후 정부의 추가적 지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대규모 행렬이 이어지면서 뉴올리언스는 카트리나 피해 이전의 모습을 거의 회복한 상태다.

뉴올리언스를 상징하던 140년 전통의 세인트 로치 마켓은 카트리나로 당시 폐허로 변했다가 지금은 완벽히 복원돼 현대식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제방은 또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214㎞ 길이의 홍수 방지벽이 새로 설치됐다. 또한 시내에는 11억달러가 투자된 대형 병원이 개설됐으며, 카트리나 때 발생했던 정전의 기억으로 새로 지어지는 가옥 지붕들에는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됐다. 미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0년간의 작업을 통해 뉴올리언스 피해 지역의 약 80%가 복구됐다고 밝혔다.

도시가 안정화되면서 각종 지표도 호조를 보이고 있는 상태다. 약 48만3,000명에 달하던 주민의 수는 카트리나 참사 이후 약 20만명으로 급감했으나, 주민들이 최근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지금은 37만8,000명까지 증가하면서 도시가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전설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루이 암스트롱의 고향이자 재즈가 탄생한 도시라는 명성을 갖고 있던 뉴올리언스에 관광객이 다시 모여들면서 루이 암스트롱 공항은 올해 처음으로 카트리나 참사 이전의 승객 수를 넘어서는 기록을 남겼다. 이에 따라 2011~2013년 뉴올리언스의 상점 창업 비율은 미 도시들의 평균보다 64%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뉴올리언스를 직접 방문하고 가진 연설에서 “도심이 한때 완전히 수몰됐었지만 지금 뉴올리언스의 변화된 모습을 보라”면서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나에게 감명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게 감명을 줬다”고 칭송했다.

저소득 흑인 차별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 여전

미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의 공공정책연구기관이 최근 뉴올리언스 거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뉴올리언스의 복원과 관련해 백인과 흑인 사이에 평가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백인 5명 중 4명은 뉴올리언스가 완벽하게 복구됐다고 답한 반면 흑인 5명 중 3명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흑인들은 뉴올리언스가 지역 경제와 교육, 삶의 질적 수준 등에서 매우 열악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NYT는 이 같은 현상이 카트리나로 발생한 피해가 낙후지역에 살던 흑인들에게 집중됐고 복구 과정에서도 이들이 소외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전체 평균소득에 비해 낮은 수준인 뉴올리언스는 카트리나 발생 이전 기준으로 주민의 약 70%를 흑인이 차지했다. 미국 전체 흑인 비율이 13%인 점을 보면 압도적으로 높다. 또 뉴올리언스는 고소득층이 사는 백인 지역과 저소득층이 사는 흑인 지역이 뚜렷이 구분될 만큼 양극화가 심했다. 카트리나는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재앙이었지만 흑인이 더욱 참담한 상황에 내몰렸다. 저소득층 비중이 높은 흑인 대부분은 백인과 달리 홍수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집값이 싼 저지대 침수지역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고, 이후 복구 과정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뉴올리언스의 로치 지역에 사는 흑인인 제리 리드(66)는 카트리나 발생 당시 폐허가 된 그의 집을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집은 카트리나가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벽면에는 물이 차 올랐던 흔적을 보여 주는 붉은 선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건물의 바닥 골조는 밖으로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파헤쳐져 있으며, 내부 벽재는 침수로 썩어서 손으로 만지면 먼지처럼 부서졌다. 리드는 루이지애나주 ‘로드 홈’ 프로그램을 통해 약 9만달러 정도의 피해 보상금을 받았지만 건물 전체 복구와 전기공사, 수도관 설치 등 망가진 집을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특히 리드는 적은 보상금으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집 공사를 소규모 건설업체에 맡겼다가 사기를 당해 그나마 남아 있던 돈도 모두 날렸다. NBC뉴스는 뉴올리언스 복구 과정에서 많은 흑인들이 리드와 비슷한 건설 계약 사기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보상금을 노린 사기단이 기승을 부린 탓이었다. 리드는 “내가 이 집 말고 갈 데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다른 집으로 옮길 만한 돈이 없다”고 한탄했다.

복구 과정에서 소외된 지역들은 범죄 소굴로 변하고 있다. 루이지애나 주정부는 최근 뉴올리언스에 3만개의 사유지가 황폐화된 채 남아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흑인이 거주했던 집들이다. 방치된 채 버려진 지역은 인적이 드물고 치안이 소홀해지면서 마약 소굴로 이용되거나 살인이나 강간 등과 관련한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다. 뉴올리언스에 거주하는 미첼 왓킨스는 “버려진 집에 가면 마약을 하면서 쓴 주사바늘 같은 것들이 나온다”고 걱정했다.

뉴올리언스 흑인 인구는 10년 전 70%에서 최근 60%까지 줄어들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흑인들이 고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올리언스 복구 과정에서 부동산 붐이 불면서 임대료가 10년 전보다 43%나 증가함에 따라 돈이 없는 주민들이 집을 빌릴 수도 없는 처지에 몰리면서 이 같은 상황은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뉴올리언스의 싱크탱크인 데이터 센터의 앨리슨 플라이어는 “많은 이들이 카트리나 이전과 비교해 경제 등 많은 부분이 좋아졌다고 말한다”면서도 “이에 반해 모든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AP에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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