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인디 음악계서 유명세 탔지만 결혼 뒤 마이크 놓고 의류회사 취직
꿈 못 잊어 사표… 2년 만에 무대로
직장인 고뇌 등 가사에 대중 열광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랩 만들 것"
꿈을 포기한 건 2013년이었다. 홍대 인디신에서 유명한 힙합 크루 지기펠라즈 멤버로 활동한 사내는 결혼을 앞두고 마이크를 내려놨다. 밥벌이가 문제였다. 미국 뱁슨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그는 외국계 스포츠 의류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과 만나면서도 마음 속엔 힙합 생각뿐이었다. 올해 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사내는 결국 6월 사표를 던졌다. Mnet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 도전을 위해서다. 아내는 힙합을 못 잊고 속앓이를 하던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해 봐라”고 눈감아줬고, 이 평범한 회사원이 개성 많은 래퍼들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극적인 사연의 주인공은 5개월 된 아들을 둔 베이식(이철주?29)이다. 7일 한국일보를 찾은 베이식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수줍게 웃었다. 사표 처리가 늦어져 ‘쇼미더머니4’ 경연을 하며 직장을 다닌 베이식은 “수액을 두 번이나 맞으며 무대에 섰는데, 이 어려운 4개월의 과정이 끝나 후련하다”고 했다.
‘아빠 래퍼’는 현란한 랩보다 미생들의 얘기를 담은 가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스탠드 업’에선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직장인의 고뇌를, ‘좋은 날’에선 철부지 래퍼가 가장이 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랩을 해 공감을 샀다. “내가 최고”라고 허세를 부리며 공격적인 말만 쏟아 붓는 래퍼를 향해 “힙합이 대세라지만, 반 이상이 인상만 쓰며 힙합이라 우기네”라고 일갈했다.
그는 특히 논란이 많았던 ‘쇼미더머니4’를 거치며 “힙합은 센 음악이 전부란 식으로 왜곡되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룹 위너 멤버인 송민호가 여성비하로, 블랙넛이 모욕에 가까운 랩으로 탈을 낸 사실을 가리킨다. 그는 “직장 다닐 때 부업으로 실용음악학원에서 랩을 가르쳤는데, 하나 같이 거칠게 소리지르면 랩인 줄 알아 충격이었다”며 “누구나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랩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경북대 의대 교수인 아버지 밑에서 “학창시절 순둥이”로 자라 래퍼가 된 베이식은 “계속 랩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우승 상금 1억원은 집 장만에 보탤 생각이다. 베이식은 가슴 한켠에 꿈을 품고 사는 미생들에게 “꿈을 잊지 말고 살자”는 말을 남겼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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