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고통도 결국 지나간다. 올 여름 사람들을 괴롭히던 무더위도 지나갔다. 예언하노니 어느새 두세 주 앞으로 다가온 추석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곧 다가와 사라져갈 추석을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것은 추석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다. 기대는 높을수록 충족되기 어렵고, 낮을수록 의외의 만족감이 있다. 최고를 열망했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마침내 천하제일검객이 된 뒤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기쁘지 않다. 추석은 명절이고, 명절은 축제이고, 축제는 일상보다 즐거워야 한다. 그러한 기대는 우리를 실망시킬 공산이 크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기대감을 부추기지 말라. 대신 “추석도 이번 생의 하루에 불과하지 않겠나”라고 말하라. 추석특집프로도 평소보다 더 재밌을 거라고 광고하지 말기 바란다. 부풀려진 기대 때문에, 평소 연속극보다도 재미없을 가능성이 크다.
“가족과 이웃이 정을 나누는 명절”이라는 말도 너무 자주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 말은 명절을 맞아 갑자기 깊은 정의 사우나를 할 것 같은 기대를 준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가족의 상태는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상태에 있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녀로부터 상속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식 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는 상속 뒤 자식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증여를 해지하는 소송을 진행 중인 78세의 어르신이 참석해 자신의 사례를 증언하기도 했다.
“추석은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말도 삼가는 게 좋다. 이미 한국사회에 많은 다민족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에서 너무 많이 죽는다고, 베트남정부가 공식 외교채널을 통해서 항의하는 것을 보라. 도로변에 붙어 있는 “신부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국제결혼주선 광고를 보라.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빨리 빨리 해” “때리지 말아요”와 같은 한국어를 빠른 속도로 습득하며 이 사회의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는 이미 오랜 다민족 전통이 있음을 잊지 말자. 조선왕조 창업공신의 일부는 여진족이며, 고려 후기 상당수의 왕들은 몽골 공주와 혼인했고, 단군을 낳은 환웅과 웅녀는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
한복도 좀 더 보편적이고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색동저고리는 아이가 입으면 예쁘지만, 어른이 즐길만한 미니멀리즘은 없다. 물론 한복도 꾸준히 현대에 맞게 개량되어 왔다. 그러나 나는 개량한복을 입고 나가 소개팅에서 실패한 학생들을 알고 있다. 그 학생들이 추석을 즐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추석 음식은 어떤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어서 교자상에 올리면 가장 좋은 대접으로 여겼다”는 신선로조차도 스스로 해먹고 싶지는 않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남이 해줄 때만 맛있다. 추석음식을 마음 편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직접 음식을 하지 않는 가정의 권력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송편 속에 콩을 넣는 만행이 지속되고 있다. 송편을 한입 물었는데 그 속이 꿀이 아니라 콩일 경우 다들 큰 좌절감을 맛보지 않나.
추석을 즐기기 위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 정신에 충실하기로 하자. 누구나 자기 손으로 신선로를 만들어 먹을 권리쯤은 있다, 콩이 싫다면 송편에 어떤 속을 넣을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여 트라우마를 치유하자.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없어 추석연휴에야 비로소 고향에 내려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교통체증을 피해서 미리 다녀올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로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은 추석을 맞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될 것이고, 그만큼 이 공동체의 정체성도 탄력적이 될 것이다. 취직은 했느냐, 결혼은 언제할거냐 라고 묻는 친척의 “위헌적 처사”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보너스를 털어 비행기를 타기로 하자. 기내식 송편에는 콩이 없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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