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 황간호사役 드라마 신고식
“드라마 속 제 모습을 보고 지구를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너무 못해서요(웃음).”
황 간호사의 광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여진(김태희)의 뺨을 내리치고선 립스틱을 발라주며 “내가 예쁘게 만들어줄게”라고 읊조리던 엽기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있었다.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배해선(41)은 SBS 드라마 ‘용팔이’에서 여진에 대한 이유 모를 집착을 보이며 섬뜩한 표정을 짓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너무 부끄러워 날 아는 사람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수줍게 웃었다.
사이코패스 황간호사 역으로 드라마 신고식을 치른 배해선은 20년 경력의 뮤지컬 배우로 유명하다. 시청자들에겐 낯선 얼굴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맘마미아’ ‘아이다’ ‘삼총사’ 등 유명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도맡은 ‘뮤지컬계의 디바’다.
2~3년치 공연 스케줄이 꽉 차 있는 그에게 드라마 출연은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분야였다. 기회가 찾아왔다. 올해 초부터 준비하던 공연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미뤄지던 차에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았다.
백전노장의 배우이나 드라마에선 신인. 배해선은 “무대에는 셀 수 없이 섰지만 카메라 앞에선 실수를 연발하는 영락없는 신인이었다”고 말했다.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도 없어 촬영이 끝난 뒤엔 어디서 쉬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주원과 김태희, 정웅인 등 함께 출연하는 ‘드라마 선배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조언해준 덕에 낯선 현장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는 “촬영 내내 20년 전 연기 초년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드라마 속 배해선의 연기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시청자들은 병실에서 그가 뿜어내는 음침한 분위기에 압도됐다. 마치 인형놀이를 하듯 여진의 머리를 빗어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여진을 죽이려는 병원장에게 칼을 휘두르는 등 황 간호사는 시청자들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괴기스러운 캐릭터였다. 배해선에게도 “이렇게 강렬한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뮤지컬 ‘삼총사’(2009)의 악녀 밀라디, ‘아가사’(2013~2014)에선 내면의 살의와 싸우는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 등 나름 강한 역할을 많이 한 편인데 황 간호사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했습니다.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봐주신 듯해요.”
지난달 27일 방송에서 황 간호사가 죽음에 따라 배해선은 다시 무대로 돌아갈 준비에 한창이다. 10일부터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올라가는 연극 ‘타바스코’에 출연해 왕년에 잘 나갔던 여배우 리즈로 변신한다.
첫 드라마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겨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하지만 ‘용팔이’를 통해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한 장면 한 장면 공들여 찍어낸 드라마에 대한 매력을 체험했다. 그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내고 공감을 일으키냐가 관건”이라며 “카메라 앞에서 편하게 연기하는 날이 곧 올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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