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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감시의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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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감시의 불편

입력
2015.09.0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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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이맘 때 나는 알래스카 놈 항(port Nome) 앞바다에 떠 있었다. 인천에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일본을 통과하고 캄차카 반도 옆으로 타고 올라간 다음 베링해를 가로지르고 나서야 도착한 곳이었다. 항해를 오래 하다 보면 땅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다. 오죽하면 경력이 오래된 선원은 아직 보이지도 않은 땅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하겠는가.

연구선이 닻을 내린 곳은 항구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낯선 이국의 풍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마을 뒤 산 능선에는 짙푸른 이끼류만 자라고 있었다. 한여름이라 그나마 이러지 조금만 있으면 눈이 내린다고 했다.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는 사금 채취선이 앞바다 이 곳 저 곳에 떠있고 아문센 기념 동상과 개썰매 대회 종착지 표지가 있는 거리는 한산했다. 그 사이를 간혹 왜건이 지나가며 먼지를 풍겼고 대낮부터 보드카에 취한 이누이트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냥을 포기한 대신 연금을 받는다고 들었다. 놀랍게도 식당과 주점 주인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곳 바다가 대형 광어 낚시터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낚시꾼인 나는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낚시란 바늘만 있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가능한 행위이다. 더군다나 내가 있는 곳은 명색이 배 아닌가. 찾아보면 어디선가 낚싯줄 정도는 나올 테고 미끼는 조리장에게 부탁하여 냉동 오징어 따위를 얻을 수 있으니까 충분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닥터가 가장 튼튼한 수술용 바늘을 가지고 오겠다고 답했다. 나보다 그가 더 들떠 있었다.

그러나 하지 못했다. 허가증 없이 낚시 하다 적발되면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물린다니까. 무분별한 낚시는 나도 반대라서 충분히 수긍됐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적발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위성 카메라로 24시간 우리 배를 감시 한다는 설명.

베링해를 넘는 도중에 선장이 화가 난 적이 있다. 누군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선원과 연구원들 모두 집합 시켜놓고 한바탕 교육을 했다. 놈 항에 입항하면 미국 직원들에게 철저하게 검사를 받는단다. 그래서 나는 쓰레기를 미국에다 버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고스란히 되가져오는 거였다. 분리수거야 당연한 것이지만 자기 나라로 되가져가는 것까지 다른 나라 사람이 ‘지적질’한다는 사실에 그때 일차 충격을 먹었다.

실제로 항구에 정박하자 그곳 세관직원들이 와서 한바탕 잡도리 하듯 훈련을 시키고 검사를 해댔다. 끝난 다음 모든 선원들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으니까. 나는 좀 의아했다. 환경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전쟁 한번 덜 하는 게 훨씬 이 세상에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아무튼 감시까지는 그렇다고 친다. 정작 큰 충격은 그 다음이었다. 그들의 감시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리들 메일을 열어볼 권리까지 있었다. 아라온호는 북위로 올라갈수록 인터넷이 자주 끊겼다. 때문에 놈 항에 들어갔을 때에야 다들 마음껏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는 메일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출판사 담당 편집자나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누구인지도 모른 이가 그 내용을 들여다본다는 것 아닌가. 이 불쾌감은 아주 오래 갔고 우리가 약소국가라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경우가 벌어졌다. 국정원이 해킹을 통해 스마트폰이나 PC에 접속해서 사진이나 문서를 보았다고 의심되는 정황이 일어난 것이다. 심지어 원격조정도 가능해서 대상자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거 정말 엄청난 일인데 참으로 희한하다. 사람들이 별로 화를 내지 않아서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다. 덕분에 이 시간에도 음지의 누군가가 우리의 사적인 곳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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