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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슬플 땐 웃긴 녀석들? 맛있는 녀석들!

입력
2015.09.0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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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찾게 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나에겐 그런 프로그램이 바로 ‘맛있는 녀석들(코미디TV)’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 프로그램은 먹는 것 좋아하는 푸짐한 몸매의 남녀 코미디언 네 명이 등장하는 맛집 탐방+먹방 프로다. 요즘에 TV에서 넘쳐나는 게 ‘먹방’이지만, ‘맛있는 녀석들’처럼 ‘빵 터지는’ 먹방은 참 드물다. 가끔은 이 프로그램이 먹방을 가장한 개콘의 한 코너 같다는 생각도 한다.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서 좀 미안하지만, ‘테이스티 로드(올리브TV)’ 같은 인기 먹방 프로는 보면서 좀 불편할 때가 있다. 너무나 예쁘고 날씬한 박수진과 리지가 너무나 예쁘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 때문에 그렇다. 화면도 예쁘고, 때깔도 예쁘고, 보는 재미도 좋고, 뭐 다 좋은데 여성 시청자들은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쟤네들은 일주일에 한 번 촬영 때만 저렇게 먹고 나머지 6일은 굶으면서 죽도록 운동하겠지?’

다시 말하자면, ‘보는 재미’는 있지만 마음 편하게 공감하면서 보긴 좀 어렵다는 얘기다.

'맛있는 녀석들' 방송화면 캡처.
'맛있는 녀석들' 방송화면 캡처.

반면에 ‘맛있는 녀석들’은 잘 먹고, 잘 노는 친구들이랑 요란하게 웃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은 느낌이다.

특히 김준현과 문세윤은 예능감이 정말 좋다. 김준현은 안쓰러울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정말 많이 먹고, 또 맛이나 식감에 관함 아주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 점이 또 의외로 웃긴다. 이를테면 고깃집에서 상추쌈을 먹을 때 “상추를 그냥 풀처럼 씹으면 맛이 덜하고, 밥을 주변에서 욕할 정도로 많이 넣어서 먹으면, 쌈이 입 속에서 폭죽처럼 팡팡 터진다. 그 식감이 정말 맛있다”고 ‘명 강연’을 한다. 김치찌개엔 잎 부분보다 흰색 부분이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있어야 더 맛있다는 확고한 철학까지.

문세윤과 김준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한입에 넣어 먹으면서, “역시 밥은 고봉밥을 숟가락에 담아 먹어야 한다”고 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빵 터진다. 둘은 숟가락에 밥을 얼마나 깨끗하게 담아야 하는지, 그걸 한입에 넣기 위해서 손목 스냅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보통의 먹방 프로그램에서는 음식을 먹는 출연자들이 한입 맛을 본 후 호들갑을 떨거나 과장해서 맛을 표현하는데, 여기선 네 명이 별 말도 없이 정말 묵묵하게 음식을 쩝쩝 먹는 모습도 재미있다. 촬영 도중 조명이 나갔는데도 끊임 없이 먹다가 결국 촬영 재개 때 국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워 버린 ‘제첩국 편’은 네티즌 사이에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역시 코미디언들 답게, 어떤 상황이든 너무나 웃기게 소화해낸다. 불고기를 잔뜩 먹고 추가 1인분을 시키면서 정말 진지하게 “1인분이란 말은 정말 너무 슬프지 않냐”라고 말할 땐 개그 프로그램 대사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MSG가 ‘마쉬게(맛있게)’의 약자라서 그게 들어가야 음식이 맛있다는 둥,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던 유민상이 “은혜를 받았다”며 열혈 신도 같은 동작을 한다든가 하는 장면이 바로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이다. 탕수육 집에서 배가 불러 죽겠다고 한숨을 쉬던 문세윤이, 새 메뉴가 나오자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바지 단추를 풀더니 “리셋 됐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도 그렇다. 마치 웃기고 잘 먹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한바탕 웃다가 오는 것 같다.

여기에 출연자들이 각자 해당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맛있는 팁’을 말해주는데, 대부분이 고칼로리 음식을 또 추가하거나 맛깔나게 양푼에 비빔밥을 만드는 식이다. 또 맛있는 팁을 소개하면서 추가로 먹어치우는 양이 엄청나다는 점도 웃긴다. 치킨 편에선 마요네즈와 청양고추, 연겨자소스를 섞은 새로운 소스를 만드는 팁을 소개하다가 치킨 한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맛있는 팁’은 대부분이 엄청난 고칼로리 팁이라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이를테면 짜장면에 감자튀김을 올려서 먹으라든가, 양념치킨을 손으로 찢어서 김과 참깨를 추가해 비빔밥을 만든다거나, 메밀전병을 마요네즈에 찍어먹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지나치게 비싼 메뉴나 어려운 제조법으로 위화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먹방 중에서도 이런 ‘길티 플레저’ (Guilty pleasure·의식을 느끼면서도 쾌락이나 기쁨이 동반되는 감정)를 채워주는 프로그램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이 프로그램 5개를 연속으로 다운 받아서 봤다. 순간적으로 확 당기는 메뉴 편을 휙휙 골라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연속으로 보면서 깔깔깔 웃다가 문득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마흔 네 번 석양을 본 날, 너는 몹시 슬펐니?”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네. 나는 그날 몹시 슬프고 힘이 들었나 보다.

방송 칼럼니스트

'맛있는 녀석들' 공식 포스터
'맛있는 녀석들' 공식 포스터

<맛있는 녀석들>

코미디TV 매주 금요일 밤 8시20분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 맛 좀 아는 녀석들의 신개념 먹방 제안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맛있는 녀석들’은 올해 1월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3개월여만에 정규 편성됐고, 정규 기념 이벤트로 출연진들이 명동에서 시민들에게 핫도그를 나눠줬다.

2. ‘맛있는 녀석들’의 출연진의 ‘대식’은 이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화제거리다. 치킨 편에서는 4명이 11마리를 먹었다고 한다. 무한리필 버섯전골 집에서는 세 차례의 리필, 공기밥 추가에 음료 추가를 하다가 또 한 번 리필을 해 달라고 ‘애교 작전’까지 폈다. 결국 아주머니가 “이렇게 먹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는. 청국장집에서는 공기밥 13그릇을 해치웠다.

3. 이 프로그램은 하루에 두 가지 아이템을 한꺼번에 녹화한다. 주로 점심과 저녁을 연달아 촬영하는 강행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 양이 많다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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