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학생들 대입 상담 돕고자
MB 때 진로교사 정원 외 교원 인정
서울교육청 "3년 내 철회" 일방 통보
“4년 만에 정책이 바뀔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죠.”
서울 시내 한 사립고교에서 진로진학상담교사(진로교사)로 활동 중인 김모(55) 교사는 25년 동안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수업 준비에 쫓겨 진로 고민에 빠진 학생들을 돕지 못해 안타까웠던 김 교사는 2011년 자격증을 따고 진로교사로 전향했다. 필수 수업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상담시간으로 대체한다는 교육 당국의 정책을 믿고 분야를 바꿨던 것. 하지만 최근 이를 번복하는 취지의 공문을 받은 그는 정확한 수요예측에 기반해야 할 교원수급 정책이 이렇게 조변석개하니 황당할 뿐이다. 김 교사는 “이제 국어교사 때 했던 만큼 수업을 하면서 상담까지 병행하거나 ‘과원교사(정원초과 교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립학교 진로교사들이 교육당국의 오락가락 정책 탓에 학교의 골칫거리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서울시교육청이 사립학교 진로교사를 정원 외 교원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던 방침을 최근 철회키로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도입된 입학사정관제에 맞춰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진로교사 육성 정책’이 허울만 남게 됐다는 지적이다.
6일 본보가 입수한 서울시교육청 공문에 따르면 시교육청은 지난달 18일 “진로교사를 정원 외 별도 교원으로 배정하게 했던 기존의 방침을 향후 3년에 걸쳐 철회한다”는 입장을 서울시내 사립학교에 내려보냈다.
교육당국이 4년 전 사립학교 진로교사 육성책을 실시한 것은 이명박정부 들어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등으로 대학의 입시전형이 복잡해지자 사립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보다 전문적인 입시전략 및 진로상담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시교육청은 지난 2011년부터 사립학교에서 진로교사를 정원 외 별도로 둘 수 있도록 했다. 기존 교과목 교사가 진로교사로 전향했을 때 그 교과목을 새로운 교원을 채용해 맡길 수 있도록 정원 제한을 풀어준 것이다. 진로교사는 주당 10시간 이내의 수업을 하는 대신 8시간 이상 진로상담 및 진로진학설명회 등에 참석하며 학생들의 입시전략 및 진로상담에 주력할 수 있었다. 이런 정책에 따라 서울시내 사립학교 교사 293명(교육부 추산ㆍ2014년 12월 기준)이 진로교사로 변신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이 향후 3년 안에 이들의 별도 교원 지위를 박탈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진로교사들은 졸지에 과원교사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과원이 되지 않기 위해선 진로교사가 정규교사만큼 수업 시수를 담당하거나, 다른 일반교사들이 진로교사 수만큼 수업을 분담해야 한다. 김 교사는 “진로교사로 전향할 때 7년 이상 진로교사로 활동한다는 조건이 있어 원래 교과목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며 “무엇보다 정원초과 교사 신분이 지속될 경우 해고의 위험성도 높아진다”고 토로했다.
교육당국은 감사원 지적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감사원이 교육부에 사립학교 교원이 공립학교에 비해 많다는 취지의 ‘사립학교 교원 배정 부적정’ 통보를 내려 교육부가 사립학교 정원을 감축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며 “4년 전에는 진로교사 육성이 국정과제였기 때문에 무리하게 교원을 증원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진로교사들은 시교육청의 통보에 반발하고 있다. 오장원 진로진학교사협의회 회장은 “교육부로부터 받은 진로교사 자격증을 반납하고 교육당국 주관의 행복진로박람회에도 전원 불참하기로 했다”며 “시교육청에 대한 행정소송과 교육당국을 규탄하는 1인 시위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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