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민규 표절 인정
표절 의혹 일본 만화 “읽은 적 없다”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로 번복
“윤리적 비난, 평생 감내해야 할 인생의 빚”
소설가 박민규씨가 자신의 데뷔작인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2003·삼미)’과 단편 ‘낮잠’(2007)에 대한 표절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소설가 신경숙씨 표절 논란 당시 다른 작가들의 과거 표절 의혹도 불거졌으나, 작가가 직접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는 월간중앙에 보낸 해명문을 통해 ‘낮잠’의 표절 대상작으로 거론된 일본 만화 ‘황혼유성군’에 대해 “신인 시절 ‘읽을 만한 책 추천’ 등의 잡문을 쓰기 위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며 “(표절로) 제시한 부분들은 설사 보편적인 로맨스의 구도라고 해도 객관적으로 비슷한 면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문학평론가 정문순, 최강민씨는 ‘낮잠’이 ‘황혼유성군’의 구성과 아이디어를 표절했다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작가는 해당 작품을 읽은 적이 없다며 불쾌함을 표했다.
‘삼미’에 대해서도 인터넷에 게시된 한재영씨의 글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사’를 도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작가는 책 발간 당시 작가의 말에 “연락할 길 없는 한재영씨께”라고 쓰고, 이후 인터뷰에서도 도용 사실을 인정했으나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던 유머 글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해 인용했을 뿐 “저작권이 있는 글이라고는 전혀 인식을 못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번 해명문에서는 자세를 바꿔 “명백한 도용이고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사과했다. 작가는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사’뿐 아니라 당시 인터넷매체 딴지일보 등에 게시된 ‘프로야구 기명사전’이란 글도 “그대로 소설에 옮겨 썼다”며 “당시 저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간이었고 무지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부덕의 소치가 분명하다.
출처를 기재하지 않은 것에 따른 윤리적 비난은 내가 평생 감내해야 할 인생의 빚”이라고 잘못을 인정했다. 또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표절에 대한 교육과 조정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민규 작가의 정면돌파에 대해 한 편에선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신씨가 표절을 속 시원히 인정하지 않은 데다가 백낙청 창착과비평 편집인도 ‘의도성을 확신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명백하게 표절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을 토로하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한 독자는 “‘삼미’가 없으면 박민규도 없다”며 작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 의혹을 제기한 정문순 평론가는 “표절 인정이 미흡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낮잠’에 대해 “작가의 주장은 ‘의도적으로 베끼진 않았지만 다시 봤더니 두 작품이 닮아 있고, 그제야 원작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는 식인데 이는 사실상 표절 인정이라고 볼 수 없다”며 “두 작품은 줄거리, 구성, 세부요소 등이 상당부분 닮아 의도적으로 참조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삼미’에 대해서도 “비교적 명백하게 (표절을) 밝혔지만 본인이 참조한 것보다 축소해서 혐의를 인정한 것 같다”며 유감을 표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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