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버티자! 버티자! 사력 다했다"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 전복된 낚시 어선인 돌고래호(9.77t·해남선적)의 실종 낚시꾼과 선장을 찾기 위한 수색이 6일 오후 2시 현재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해경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돌고래호는 사고 발생 약 1시간 30분 이전에 위기 징후를 감지했다. 사고 후에는 선장이 배 위에서 생존자들을 안심시키면서 살려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약 1시간 만에 실종됐다.
생존자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해상에서 밤새 "살려주세요"라며 목청껏 외쳤으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가 6일 오전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생존자 이모(49·부산시)씨가 1박 2일 일정으로 제주도 낚시에 나선 것은 5일 오전 새벽 2시다. 주말을 맞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모인 일행 10여명과 함께 전남 해남군 남성항에서 다른 낚시꾼과 만나 돌고래호에 올랐다.
전체 승선 인원은 선장을 합하면 대략 19∼20명이다.
이때만 해도 제주 추자도로 가는 뱃길은 순탄했다. 파도의 높이가 최고 0.5m였다.
이씨 등이 제주 하추자도 신양항에 도착한 것은 2시간가량 뒤인 오전 3시 59분께다.
배에서 내린 이들은 당일 오전까지는 추자도 인근 섬에서 돔을 잡느라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나 오후 1시 이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 것이다. 특히 오후 6시에는 시간당 20㎜가 넘는 폭우로 변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일정이 엉클어졌다.
추자도에서 일박을 하려던 일정을 바꿔 조기에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다들 의견이 모였다.
돌고래호 선장 김철수(46)씨도 승객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서둘러 되돌아갈 준비를 했다.
오후 7시께 돌고래호는 신양항(하추자)을 떠나 전날 출발지인 해남으로 되돌아가는 뱃길에 올랐다.
파고가 2m 넘어 배가 심하게 요동쳤지만, 안심했다. 당일 새벽에 왔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선장 김씨는 다른 낚시꾼을 태우고 추자도를 함께 출발한 돌고래1호(5t)와 자주 통화하며 안전 운항 여부를 확인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씨는 선수 쪽 아래 선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9명가량이 선실에 있었다.
구명조끼는 비에 젖은 탓에 입기에 불편해 옆에 뒀다. 대부분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다른 생존자인 박모(38)씨도 당시 선실에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머잖아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출항한 지 불과 20∼30여분 지났을까. 배가 '쾅쾅' 소리를 내며 옆으로 뒤집히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완전히 전복됐다.
이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 이씨는 기억하지 못한다.
해경은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씨가 오후 7시 44분과 46분에 돌고래호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김씨는 "잠시만"이라는 짧은 대답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사고 순간을 이 시각쯤으로 추정할 뿐이다.
돌고래1호가 오후 7시 38분께 돌고래호 선장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해상 기상이 좋지 않으니 추자도 북쪽 끝인 횡간도 옆 무인도 녹서(노린여)에서 만나 같이 해남으로 돌아가자고 통화한 직후다.
캄캄한 밤, 해상에서 배가 순식간에 뒤집히자 낚시꾼들은 동요했다.
그래서인지 사고 순간에 대한 기억은 생존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박씨는 높은 너울에 배가 전복됐다고 떠올렸다.
그는 "배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배의 시동이 꺼지면서 선장이 밖으로 나가라고 했고 이 와중에 배에 물이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이어 "내가 맨 마지막으로 배에서 빠져나가자 동시에 배가 뒤집혔다"고 덧붙였다.
박씨와 이씨는 전복된 배 위에서 간신히 몸을 버티며 의지했다.
선장 김씨 등 다른 4명가량도 뒤집힌 배 위에서 같이 있었다.
나머지 낚시꾼은 구명조끼를 허겁지겁 입거나 꺼내 든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낚시꾼들은 전복된 배 주변 해상에 둥둥 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아있어 보였다.
선장 김씨는 "배가 항해를 하면 어떤 무선 통신이 해경과 연결돼 있어 해경이 반드시 구조하러 온다"고 모두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말라, 해경이 금방 올꺼다."
선장은 이씨 등에게 힘내라며 격려의 말을 계속 했다.
이씨 등은 컴컴한 해상에서 "'살려주세요'라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기다리고 기다렸는데도 구조의 손길은 오지 않았다.
파도는 갈수록 높게 일었다. 배 위의 사람들은 탈진한 듯 한 사람, 한 사람 바다로 떨어져 나갔다.
"30분만 더 버텨보자, 1시간만 더 버텨보자"던 선장 김씨도 다른 이들을 구조하려다 바다에 빠진 후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씨는 "온 힘을 다해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살 가망이 없는 것 같았다. 해경 함정이 멀리 보이기는 했으나 우리 쪽으로 빛을 비추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고 그랬다"고 회상했다.
해경은 오후 7시 50분께 추자항으로 되돌아온 돌고래1호가 돌고래호의 통신 두절 사실을 제주해경 추자안전센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추자안전센터는 오후 9시 3분께 제주해경 상황센터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돌고래호의 위치는 배에 설치된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를 통해 5일 오후 7시 38분께 추자도 예초리(하추자) 북동쪽 500m 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은 오후 9시 10분께부터 V-PASS로 확인된 돌고래호의 마지막 위치와 탑승객 휴대전화의 최종 발신 위치 등을 파악해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야간인데다가 추자도 인근 해역에 바람이 초속 9∼11m로 강하게 불고 물결도 2∼3m로 높은 것은 물론 비까지 많이 내린 탓에 구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돌고래호는 통신이 끊기고 10시간여 뒤인 6일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남쪽 무인도 섬생이섬 남쪽 1.1㎞ 해상에서 뒤집힌 채 발견됐다.
전복된 배 위에서 끝까지 버틴 이씨와 박씨 등 3명은 어선에 의해 구조되고서 헬기를 통해 제주 시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10명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으며 나머지 6∼7명은 아직도 실종 상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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