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표 사실 특정 않고 배심원에 전달"'
고법, 국민참여재판 평결 파기
1심과 달리 혐의 세분화해 판단
"고승덕 후보 관련 공개한 내용은 공직에 적합한지 검증 의도"
조희연(59) 서울시 교육감에게 선고유예를 선택한 서울고법은 1심과 달리 공소사실을 세분화해 유죄 여부를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유무죄가 갈리면서 형량 감경이 이뤄졌고 결국 선고유예를 내리는 주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가 75분간 ‘일부 무죄→일부 유죄→선고유예’의 판결문을 읽는 동안, 법정은 웃음과 탄식 환호가 오가는 반전을 거듭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교육감 선거 당시 고승덕 후보에 대한 조 교육감의 영주권 보유 의혹 제기에 관한 공표 사실을 세 가지 유형으로 쪼갰다. ‘고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보유 의혹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제3자에 의해 그런 의혹이 제기돼 의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재판부는 먼저 조 교육감이 지난해 5월 국회 기자회견(1차 공표)을 열어 “고 후보와 두 자녀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언급한 부분을 무죄로 봤다. 당시 지상파 출신의 인터넷 방송사 소속 최모 기자가 트위터로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한 뒤 트위터 이용자 1,377명이 이를 리트윗 해, 검증을 요구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존재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조 교육감이 ‘고 후보가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직접 언급한 게 아니어서 객관적인 소명자료가 필요하지도 않다고 봤다. 앞서 국민참여재판(국참)으로 진행된 1심은 “피고인의 사실 확인 노력이 없었다”며 1차 공표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공표된 사실이 무엇인지 특정하지 않은 채, 사실의 표명인지 의견의 표명인지만이 배심원에게 전달됐다”며 국참 평결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국회 기자회견 이틀 뒤 라디오에서 했던 2차 공표에 대해선 1심과 같이 “허위의 미필적 고의, 낙선 목적 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조 교육감은 당시 “고 후보는 공천 탈락 뒤 지인들과 언론인들에게 ‘상관없습니다. 저는 미국 영주권이 있어서 미국 가 살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고 후보가 나름 해명을 한 상황에서 ‘고 후보가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일부 무죄, 일부 유죄를 판단 한 뒤 양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낙선목적의 허위사실유포 혐의는 최저 형량이 당선 무효형(벌금 100만원)보다 높은 500만원이기 때문이다. 판단의 최종 잣대는 유죄로 인정된 허위사실 공표가 선거에 미친 영향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일시적이나마 유권자 판단에 부정적 영향을 줬을 수는 있다”면서도 당선을 무효로 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유죄 인정에 따른 최소 형량(벌금 500만원)을 작량감경(정상참작)해 벌금 250만원을 선고한 뒤 이를 유예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의혹 제기 48시간여 만에 더 이상 선거쟁점으로 확산되지 않았고, 상대 후보자도 여권 사본을 제공, 해명의 여지가 있었다”며 “악의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선고유예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즉각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판결로 조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대법원이 법리 판단만 하고 양형에 대해선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조 교육감에게 선고유예는 무죄 판단보다 더 유리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이 1차 공표를 유죄로 파기환송 할 경우, 양형도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날 조 교육감은 선고 예정시간(오후 2시)보다 15분 가량 일찍 법정에 도착했다. 200여석 남짓한 법정을 가득 메운 그의 지지자들은 재판장이 마지막 “선고를 유예한다”고 말한 순간 “와”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조 교육감은 법정을 나와 지지자들에게서 꽃다발을 받은 뒤 “유죄 부분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교육감직 수행에 있어 더욱 섬세하고 신중하게 노력하겠다고”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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