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바브링카와 US오픈 2회전…3시간 양보 없는 타이브레이크 게임
2세트엔 스코어 앞서가기도 했지만 서브에이스 26개 내주며 0-3 분패
"한 세트에 1시간·에너지 모두 쓰자 경기 전 생각했던 목표 이뤘어요"
졌지만 또 다른 희망을 봤다. 정현(19ㆍ삼성증권 후원ㆍ69위)이 비록 세계 랭킹 5위 스탄 바브링카(30ㆍ스위스)에 분패했지만 이 경기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정현은 4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총상금 4,230만 달러)단식 2회전에서 바브링카에게 0-3(6-7 6-7 6-7)으로 패했다. 3시간 2분에 걸친 난타전에 마침표를 찍은 건 26개에 달한 바브링카의 서브에이스였다. 반면 정현의 서브에이스는 단 3개였다.
바브링카는 지난해 호주오픈과 올해 프랑스오픈 챔피언이자 지금까지 정현이 맞선 상대 가운데 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다. 그랜드슬램 대회 1승만을 거둔 신예 정현으로선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에 가깝다. 하지만 정현은 바브링카를 맞아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출발은 불안했다. 정현은 1세트 게임스코어 0-3으로 끌려갔지만 이내 바브링카의 서브게임을 따내 3-3 균형을 이뤘고 이후 타이브레이크로 상대를 밀어 붙였다. 내심 정현에 낙승을 기대했던 바브링카로선 당황스런 56분이었다.
승부처는 2세트였다. 1세트를 접전 끝에 내 준 정현은 게임스코어 3-0, 4-1까지 앞서며 경기를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바브링카는 2세트까지 서브 에이스 18개를 터뜨리면서 정현을 압박했다. 4-4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바브링카는 타이브레이크에서 정현을 7-4로 따돌렸다. 1시간4분이 걸린 혈투였다.
1,2세트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맞선 정현은 3세트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흐르는 땀으로 양말을 갈아 신어야 했고 다리에 쥐가 나 경기 도중 마사지를 받아가면서 투지를 불살랐다. 정현은 3세트도 1시간2분 동안 타이브레이크 분투를 이어갔지만 끝내 바브링카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경기가 끝난 후 정현은 “2세트는 앞서나가다가 뒤집힌 게 아쉬웠다. 결과를 떠나서 코트에서 쥐가 나도록 뛰었으면 잘 한 거 아닐까”라며 “강호를 상대로 쉽게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경기 중에는 어떤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며 “끝나고 생각해보니 경기 전에 목표로 세웠던 ‘남은 에너지를 다 쏟는 것’과 ‘한 세트에 한 시간’을 모두 이룬 것 같다”고 자평 했다. 윤용일 코치 역시 “‘2세트를 잡았으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아쉬움 있다. 한 세트라도 잡았으면 경기 흐름 완전히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번 대회 2회전 진출에 만족해야 하지만 정현은 그랜드슬램 1승이라는 올해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 지난 6월 윔블던 테니스대회에 이어 메이저 대회 본선 진출 두 번째 만에 이룬 쾌거다. 이형택(39) 이후 7년 만에 그랜드슬램 1승을 거둔 정현의 향후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형택은 정현이 앞으로 실력은 물론이고 투어급 선수로 뛰기 위한 전반적인 생활 습관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형택은 “정현은 이번 경기로 본격적으로 투어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면서“골프, 야구 선수들이 해외 진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영어 실력으로 본인을 알릴 줄 알아야 하고, 빡빡한 해외 투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현은 US오픈 남자 복식 일정을 소화하고 귀국해 2, 3주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아시아 투어에 전념하고 필요에 따라 챌린지 대회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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