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만 가득한 시대. 자원은 고갈, 소비는 위축되어만 간다. 서구 금융모델은 망가지고, 신흥시장이 쉴새 없이 뜨고 지는 시국이 기업가라고 장밋빛일 리 없다.
‘주가드 이노베이션’은 이런 결핍을 발명을 위한 최상의 도구이자 원료로 정의한 낙천적 경영서다. 2012년 미국에서 출간돼 반향을 일으킨 원서를 국내 유일 적정기술 관련 논문집인 ‘적정기술’의 발행인이자 적정기술미래포럼 대표인 홍성욱 국립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장이 번역했다. 적정기술미래포럼과 소셜벤처 마이소사이어티는 “창업가, 사회혁신가, 국제개발 및 해외사업가들에게 주가드 혁신 열풍이 불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국내 출판했다.
주가드(Jugaad)는 ‘기발함에서 비롯된 즉흥ㆍ독창ㆍ혁신적 해결책’을 뜻하는 힌디어의 영어식 표기로 중국의 자주창신(自主創新), 미국의 DIY(Do it yourself), 프랑스의 시스템 데(systeme d) 등과 비슷한 말이다. 미디어 전문 컨설팅 회사의 창립자(나비 라드주), 케임브리지대 경영학 교수(제이딥 프라부), 실리콘밸리의 경영 컨설턴트(시몬 아후자)인 세 저자가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3년 넘게 풀뿌리 기업가들과 만나며 발견한 “기발하면서도 간단한, 그렇지만 효과적인 혁신으로 충만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인도의 도예가 만수크 프라자파티는 2001년 지진으로 파괴된 마을에서 사람들이 냉장고 대신 깨진 질그릇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점토로 만든 냉장고 ‘미티쿨’을 발명해 팔기 시작했고 점차 수요가 늘어 해외 수출까지 하게 됐다. 냉장고 위칸에서 내려온 물이 벽에 스며 아래 칸 음식을 냉장시키는 이 발명품은 전기도 필요 없고, 자연 분해돼 오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데다 값이 50달러 수준이다. 그는 ‘눌어 붙지 않는 프라이팬’ 등 다른 점토 제품으로 확대해나갔고, 인도 대통령과 미 경제지 포브스의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저자들은 “서구 기업들이 20세기 전반 대형 R&D 연구실을 설치하고 최고의 과학자를 고용했지만, 바로 이런 것이 혁신 능력을 약화시켰다”고 단언한다. 위기와 결핍 상황에서 “더 많이 자주 빠르게, 그리고 검소하게 실패하는 것”이 의외로 폭발적 반응을 불러올 혁신을 가능케 한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책의 서문을 쓴 글로벌 광고회사 사치 앤 사치 CEO 케빈로버츠는 “사람들이 절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손에 쥐고 나면 너무나 당연한 그런 신제품을 만들어 낸 사람들, 즉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이 소유한 직관력”이 바로 주가드 이노베이션의 정신과 맞닿아있다고 평한다.
책이 도출해낸 주가드의 6대 원칙은 ▦역경에서 기회를 찾아라 ▦적은 자원으로 많은 일을 하라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라 ▦단순하게 하라 ▦소외계층을 포함하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 등이다.
숱한 악조건 속 혁신 사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는 혁신의 도화선은 위기 속에,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유연하고 획기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잊은 느낌이라면, 이 책이 한 가닥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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