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을 정치꾼들의 모임으로만 보는 정치 혐오는 더 나은 정치를 만들 수 없게 합니다. 사회가 더욱 불평등해지고 자율성이 낮아지는 건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해서입니다. 정당의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봐야 하는 건 그 때문입니다.”
박상훈(51)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최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당이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하는 도구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현실 속 정치와 학문 속 정치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데 골몰해온 그가 최근 출간한 저서 ‘정당의 발견’에서 한국의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스타 정치인이 아니라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하고 다양한 이념을 가진 정당들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교장은 지난해 정치발전소에서 했던 강연을 바탕으로 ‘정당의 발견’을 펴냈다. “정당 체계는 다원적이어야 하고 정당 조직은 유기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의 정당정치가 그와 반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당 체계가 양당 체제로 협소해지는 반면 정당 조직은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대 정당이 선거 시장에서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어요. 두 당이 사회 전체를 잘 포괄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게 아니니까 문제인 겁니다. 사회가 진보하고 시민의 욕구가 실현되려면 더 많은 당이 존재해야 해요. 반면 정당 조직은 개방과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응집력과 조직력을 해체시키고 있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 같은 제도도 미국처럼 정당이 시민의 뜻을 대변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나라에서 하는 것이지 나라도 작고 인구밀도도 높은 우리나라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박 교장은 정치 경험이 없는 법조인이나 기업가가 깨끗한 정치를 할 것이라는 대중의 생각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했다. 지역사회부터 정치를 시작해 정당 내에서 오랜 기간 훈련을 한 정치 엘리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세상을 보는 안목과 정치를 이해하는 시야, 사소한 일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내면을 갖는 건 하루 아침에 자라는 게 아니다”라며 “정치인들의 실력과 성품을 사회가 공공재처럼 향유해야 민주주의가 풍요로워진다”고 강조했다.
비판의 화살은 주로 야당으로 향했다. 혁신을 이유로 줄기 차게 외부인사를 영입하지만 당내 조직력은 점점 약해지고, 구성원들은 좋은 정당을 만들기보다 선거 마케팅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정치 엘리트들이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선거용 정당으로 야당이 전락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야당이나 비판적 지식인들은 여권과 집권 세력을 야유하는 걸 임무처럼 생각하는 듯합니다.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죠. 정치인들이 평소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선거에만 매달린다면 그건 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정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여론과 그는 생각을 달리한다. 박 교장은 “이론상으로는 500명 이상이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당의 가치에 맞게 단계적으로 늘어야 한다”며 “시민들이 보기에 국회의원이 늘어도 괜찮겠다는 걸 보장해주지 않고 숫자 논쟁만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시민보다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강연에서 종종 반발을 샀다. 한국의 민주화를 만들어낸 건 야당이 아니라 학생, 노동자, 시민이지만 그건 민주주의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교장은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촛불을 10번 드는 시민운동보다 시민권력을 대표하는 좋은 정당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대표를 맡았던 그는 올 초 대표직을 내려놓고 글쓰기와 강의에만 집중하고 있다. “출판사를 경영하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민주주의가 사회적으로 풍부해지려면 좋은 회사, 좋은 경영자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점이 힘들었는데 벗어나고 나니 마음이 정말 편하더군요. 정치에서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경제적 삶 속의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 건 7년의 경영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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