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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에만 신경쓰던 편집자 출신 초보에게 디자인·마케팅 눈뜨게 해줘

입력
2015.09.0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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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재미있는 책 내면 안 돼?”

내는 책이 읽기 어렵다는 투정을 가족들에게 듣는다. 가족이 출판 일을 하면 응원 차원에서 그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혼자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기획, 출간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제아무리 가족이라도 온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 책 역시 개인적인 관심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문명의 상징인 도시 안에 인간적인 욕망을 위해 자연 속 동물들을 데려와 만든 일종의 정원인 동물원은 여러 모로 자연과 인간, 동물에 대해 고민할 거리가 많다는 생각이었다.

책 만드는 사람들에게 어디 안 예쁜 자식(책)이 있겠냐마는 받자마자 읽은 원고는 뒷목이 서늘할 정도로 재미있어 사랑스러웠다. 책은 세계 각지에서 미국 템파의 한 동물원으로 오게 된 동물들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인생 다큐처럼 그리고 있었다. 퓰리처상 수상자답게 뛰어난 문장력으로, 동물원에 비판적인 시각과 옹호하는 시각 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각각의 시각을 한번쯤은 되돌아보게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사람들이 안 읽는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러나 자신감은 책 제작이 진행될수록 잘 팔아야 한다는 욕심으로, 이후에는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이어졌다. 편집자 출신이라 홍보, 유통, 마케팅은 까막눈이었다. 아는 게 책 만드는 일이니 책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몇 번에 걸쳐 읽으며 오?탈자는 없는지, 본문과 표지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지 궁리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난생 처음 일러스트 작가를 섭외해 표지에 쓸 그림도 그리고 교정도 수 차례 거듭했다. 서점에서 여러 분야의 책을 보며 어떤 표지 디자인이 어울릴지 고민을 거듭해 디자이너를 섭외했다. 지금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디자이너에게 제안한 의뢰서 내용은 무슨 대단한 예술작품이라도 나올 기세였다. 결국 어렵게 그린 일러스트는 사용되지 않았고, 욕심으로 뭉친 디자인 발주서는 폐기 처분되다시피 했다. 그렇게 서너 달에 걸쳐 책을 만들었다.

너무 힘이 들어간 나머지 책 내고 나서는 책 만드는 게 싫어질 정도였다. 물론 책은 잘 나왔다. 하지만 그 외엔 실수투성이였다. 특히 홍보와 마케팅은 우왕좌왕했다. 심지어 온?오프라인 매장을 가진 대형서점에 영업을 갔을 때는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온라인 담당자는 만나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온라인 서점에서 책이 나가길 기대했던 꼴을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아, 책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책을 잘 알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쓴 깨달음이 남았다. 그래도 첫 책은 나름 기분 좋은 책이다. 표지 작업에서 만난 디자이너는 지금까지 우리 출판사의 표지 디자인을 전담하다시피 하며 멋진 디자인을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가족들의 후한 평가를 받는 유일한 책이다. 요즘도 책이 나오면 이렇게 덕담 아닌 덕담을 한다. “그래도 ‘동물원’은 엄청 재미있게 읽었는데.”

에이도스 박래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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