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은퇴와 생계형 창업 증가
줄 잇는 폐업점포 중산층 붕괴의 상징
은퇴 중장년 위한 세심한 출구 대책을
거리 이곳 저곳에서 문 닫은 가게를 심심치 않게 만난다. ‘점포정리 폭탄세일’안내문을 내걸고 폐업을 준비하는 곳도 자주 본다. 그때마다 주인은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 생각한다. 보증금이야 돌려받았겠지만 권리금에 시설투자비에 대출금까지 감안하면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억대의 돈을 날렸을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아프다. 다른 한 켠에서 개업을 위해 공사 중인 점포를 보게 되면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생존할 수 있기를 빈다. 하지만 그들이 곧 부닥치게 될 현실은 엄혹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은퇴하는 베이비부머들 사이에 이런 말이 회자된다. ‘퇴직 후 서너 달은 반드시 참고 견뎌야 한다’‘일 벌이지 말고 그나마 갖고 있는 것 지키는 게 남는 거다’등. 풀어 말하면 일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쫓겨 퇴직 후 서너 달도 안돼 창업에 나서면 낭패를 보게 되니 가급적 보유자산을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ㆍ관리하는 쪽이 낫다는 충고다. 하지만 30, 40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소득도 없이 지내기란 불가능하다.
노후생활 대비와 자식 부양 등으로 돈 나갈 곳은 많은데 소득이 없다면 불안감은 견디기 어렵다. 재취업을 알아 보지만 급여 수준도 낮고 고용도 불안한 비정규직, 일용직 자리 밖에 없다. 그 순간 은퇴한 베이비부머의 선택지는 자영업뿐이다. 퇴직금 일부만 투자해서 열심히 하면 되겠지, 그래도 프랜차이즈 업체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굳은 각오가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50대 이상 자영업자의 45%가 월평균 수입 100만원 미만에 불과하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동종 점포 간 과당 경쟁과 경기 불황의 여파로 매출은 뚝뚝 떨어진다. 버틸 방도가 없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생계형 자영업자의 생존율은 창업 1년 후가 83.8%, 3년 40.5%, 5년 후가 29.6%다. 5년이 지나면 10곳 중 7곳이 가게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다.
심각한 것은 이렇게 창업 전선에서조차 밀려난 중장년층은 재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재도전에 나설 수록 수렁에 빠질 뿐이다. 퇴직금 까먹고,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받아 창업ㆍ운영 자금으로 사용했다면 상황은 최악이다. 기본적인 생활자금에 대출 원리금 상환 압박까지 가세하면 빈곤층으로의 추락은 순식간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폐업점포는 평범한 가장들이 이끌던 중산층 가정이 서서히 빈곤층으로 추락해가는 상징과 같다.
그럼에도 자영업 창업에 나서는 베이비부머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0세 이상 자영업자는 328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9만 명보다 39만 명 늘었다. 전체 자영업자 중 비중도 47%에서 57%로 증가했다. 개인사업자 대출(223조원) 중 50대의 대출이 40%에 육박한다. 계층 추락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베이비부머들이 창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지금 한국 사회의 상황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오죽하면 지난해 전체 우울증 환자 61만여 명 중 50대가 12만3,000여명(20.2%)으로 가장 많았을까.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를 위한 출구 전략에 관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에코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고 생계형 창업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고려가 없다. 기업들은 내년 정년 연장에 대비, 베이비부머 퇴출 강도를 높이고 있다. 벌써 실적 악화 등의 영향으로 올 연말 대대적 퇴출이 이뤄지고, 내년에 정년이 연장돼도 베이비부머 조기 퇴출은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때문에 노동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자영업 대책과 함께 베이비부머를 위한 출구 전략이 수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금 지원, 쉬운 대출처럼 신규 창업에만 초점을 맞출게 아니다. 창업부터 사업 정리, 업종 전환 및 전직, 자영업 구조조정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지원책과 단계별로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 이러다 중산층이 와르르 무너질까 겁난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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