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재벌의 사내유보금을 문제 삼았다. 그는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504조 원 중 1%인 5조 원만 고용창출 투자에 사용해도 비정규직 50만 명을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서 재벌들의 양보를 촉구했다.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사용해 고용창출에 좀 더 기여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는“지난해 말 기준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683조 원이지만 이 가운데 현금과 단기금융상품을 모두 포함한 현금성 자산은 118조 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마디로 투자나 고용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700조 원 가까운 돈이 기업에 묶여 있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닫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내유보금의 과다한 증가는 투자부진으로 이어져 경제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린다.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과다해진 데는 정부의 책임이 없지 않다. 투자를 유발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이나 제도개선 등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측면에서다. 경제활성화 법안들의 국회통과가 지연되고 4대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내유보금을 강제적으로 투자에 쓰도록 하는 조치도 너무 늦게 나온데다 실효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올해부터 3년간 투자ㆍ배당ㆍ임금증가 등이 이익과 비교해 부족할 경우 법인세를 추가 징수하는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적용키로 했으나 아직은 별무 효과다.
결국 기업의 의지에 기대는 외에 별 뾰족한 방도는 없는 셈이다. 물론 경기침체로 수요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설비투자에 나설 수도 없다는 하소연도 일리는 있다. 사내유보금으로 임금이나 인상하고, 선심 쓰듯 인력을 대량으로 고용하는 것은 경제 논리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터에 앞으로 다가올 중국발 경제위기 등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기업문화에서 창업 1세대의 과감한 패기와 도전정신이 사라진 때문이다. 제조업이나 첨단기술 분야는 대규모 고용창출을 유발하기 때문에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크다. 리스크가 큰 만큼 성공의 과실이나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는 크다. 그러나 대개 이런 분야는 기피하고 갈수록 유통분야 등 자잘하고 안전한 사업영역에 치중하는 흐름이다. 이런 식으로 결국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잃으면 그 직접적 피해 또한 기업과 국민의 몫이 된다. 기업인들에게 큰 시각과 좀더 전향적인 기업가 정신을 당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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