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식(閱兵式)’을 국어사전에서는 ‘지휘관이 정열한 군대를 지나며 부대의 상태를 검열하는 의식’이라고 풀이한다. 중국과 한국은 이 말을 쓰지만 일본에서는 ‘관병식(觀兵式)’이나 ‘군사 퍼레이드’라는 용어을 쓴다. 어느 경우든 군대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를 지휘하는 사람이 단속해서 살피기 위해 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 쪽 쓰임에서는 이런 군사적인 위용을 대내외에 과시한다는 목적이 잘 드러난다.
실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말뜻 풀이로만 봐도 전승기념일에 맞춰 중국이 3일 열병식을 연 것은 자국의 군사력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니까 내용을 따진다면 이날 열병식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반대한다는 전승기념일의 가장 숭고한 의미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행사에 초대 받은 각국 정상들은 전승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이징에 모일 수는 있어도, 중국이 자국의 국방력을 과시하려는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은 피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 군사 행사에 참석한 이유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 끼인 처지에서 우리는 어느 때는 중국의 장단에 맞춰줄 줄도 알아야 한다. 한반도에서 강소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려면 필요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남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당면한 과제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미국과 일본이 참석하지 않은 중국의 전승절기념식과 열병식 참가 후 한국은 과연 이런 새로운 외교의 지평을 열어 갈 수 있을까.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지렛대로 이번 방중을 활용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어떤 대의명분과 실리를 챙겨가야 할까.
“현실주의적 국제관은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료시키기 위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에서도 관철됐다.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이후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평화회담장에 초청하는 것도 반대했다. 결국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4월28일에야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체결되었으나, 이것은 역사학자 존 다워의 표현대로 “분리된 평화”였다. 당시 격화되던 냉전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키는 조약에 중국을 배제하고 한국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씨앗은 이때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 근원은 힘으로 아시아 절반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국제관이었다. 이제 미국은 항일전승일을 기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이 이를 거창하게 기념한다. 모두 힘만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오늘의 동맹국인 일본의 과거를 들추는 것이 불편하다. 부상하는 중국은 전승절에 국력을 과시하여 ‘치욕의 세기’에 한풀이를 하려 한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20세기 전쟁과 식민주의가 제대로 종식되지 못했다. 힘을 앞세운 냉전이 평화체제의 건설을 막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의 꿈’을 꾸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전쟁뿐만 아니라 식민주의를 청산하여 ‘야만의 20세기’와 확실하게 이별하자. 그리하여 화해와 평화의 21세기를 여는 ‘한반도/동아시아의 날’을 기념하자. 분단에 기대어 자신의 손에 움켜쥔 한줌 권력, 한줌 재화를 지키려는 껍데기는 가라.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기를 열 비전이다.”(한겨레신문 9월 3일자 세상 읽기 ‘전승기념일과 아시아 평화’▶전문 보기)
“오다 마코토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조금 설명하자면, 그는 15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한 비범한 지적체력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범이었다. 그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중학생의 몸으로 미군 폭격기에 의한 공습 때문에 오사카가 초토화되고 있던 현장에 있었는데, 이것은 그의 평생에 걸친 반전평화, 민주주의 사상의 원점이 되었다. 그는 폭격하는 자가 아니라 폭격 당하는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소년시절에 벌써 깨달았던 것이다. 폭탄 세례를 맞은 지상의 광경은 조종사의 눈에는 화려한 불꽃놀이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아비규환의 지옥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양심적인 인간이고자 한다면, 필요한 것은 하늘을 나는 새의 눈(鳥瞰)이 아니라 땅을 기는 벌레의 눈(蟲瞰)이다. 이 비유의 뜻은 자명하다. 지배자나 엘리트의 입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난한 민초들, 평범한 생활인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눈으로 봐야 비로소 세상의 ‘진실’이 보이고, 따라서 평화롭고 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절박한 요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다 마코토의 래디컬한 민주주의 사상은 그가 철저한 ‘국제주의자’라는 점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일본이나 한국을 막론하고,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 중에서도 민족주의적 성향을 다소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 점에서도 오다 마코토는 예외적이었다. 그와의 직접 담화나 그의 저술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가 무의식 중이나마 여하한 민족주의적 발상, 나르시시즘적인 내향성을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박정희와 김일성을 모두 직접 만나 담화를 나눈 희귀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남달리 한반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깊었지만,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자신이 1970년대에 시인 김지하의 석방운동에 적극 가담한 것은 김지하의 국적과 관계없이 그가 뛰어난 시인이며, 무엇보다 부당하게 핍박받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라고. 그러니까 오다 마코토의 지향점은 ‘부유하고 번영하는 (일본)국가’가 아니었다. 그가 바란 것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그냥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인간의 나라’였다.”(경향신문 9월 3일자 김종철의 樹下閑話 ‘‘패도’의 세계에서 ‘왕도’를 생각한다’▶전문 보기)
“한반도 주변 상황이 다소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 김정은의 자충수이다. 그는 대화복귀로 자기 실책을 빨리 거두어들여야 했다.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이 자기 외교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원칙으로부터 유연해지면서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기회도 잡았다. 열병식 참석이 좋은 예다. 중국과의 협력 강화는 북한 문제를 다룰 때뿐 아니라, 미·일을 상대할 때 한국의 위상을 강화시킨다. 시진핑은 중국몽, 신형대국관계의 개념이 말해주듯 아시아에서 대국의 위상에 맞는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 아베는 더 이상 전후 질서에 묶이지 않겠다며 한·일관계의 기초를 흔들고 적극적 평화주의를 기치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바마는 아시아 회귀로 역내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다. 미·중·일이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중견국가를 자처하는 한국만 현상유지 외교에 머물러 있다. 기존의 금기와 관성에 묶인 방어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열병식 참석이 불편하고 시진핑의 외교정책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베이징에 가는 것처럼 김정은·아베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접근해야 한다. 미국이라고 모든 것이 흡족한 것은 아니다.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 지도자의 인간적 매력, 좋은 국가 이미지, 우호적 정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 없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목표만으로도 충분하다. 외교는 상대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외교에 의해 삶의 공간을 안전하게 보장받고, 더 나은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운명을 안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더욱 그렇다.”(경향신문 9월 2일자 이대근 칼럼 ‘박근혜는 왜 베이징에 가나’▶전문 보기)
“박 대통령의 대중 외교는 실로 다이내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이 미일 양국을 자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선 미국이다. 영화를 떠올릴 것도 없이 그 전쟁에서 미국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한국을 지켰다. 그때의 적대국이 지금 세계에 과시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하필이면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일본. ‘항일전 승리’를 축하하는 군사 퍼레이드만으로도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데 “한국이여, 너도냐”는 심경이다. 게다가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일본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3국 정상들이 나란히 서면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원래 중국에서 항일 전쟁의 주역은 공산당이 아니라 국민당이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의기투합해 싸운 것도,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 등의 망명 정부를 지원한 것도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이었다. ‘그런데도…’라는 위화감이 미일 양국에 있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중국이 박 대통령을 열렬히 초청한 목적은 명확해진다. 북한을 강하게 견제하는 한편 ‘한미일’의 안보 결속을 흔들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미래에 한국을 중국의 영향하에 두고 싶은 것임에 틀림없다.?동아시아의 격동 속에 한국 정부도 물론 신중하게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외교와 내정에 미치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꼼꼼히 검토한 끝에 참석을 결단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북한에 대한 포위망을 다지는 기회이며, 한반도의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해 미국의 이해도 얻었다. 외교 당국자에게서 그런 이야기도 들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내놓은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박 대통령이 비판의 톤을 억제한 것도 한편으로 방중을 앞둔 대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이상 이제 한일 정상회담 실현에도 다이내믹하게 나서야 한다. 연기된 한중일 정상회담을 연내에 열기로 합의를 본 것은 좋았지만 그 기회를 빌려 한일 정상회담도 하려는 발상은 주체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9월 유엔 총회 때도 좋으니 우선 한일 정상회담을 연다는 기개를 기대한다.”(동아일보 9월 3일자 와카미야의 東京小考 ‘한국 대통령이 중국군을 열병한다고 하면’▶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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